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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배준호> 흡연폐해 억제, 이제 정부가 나서라
지난 1월 미국 배우 에릭 로슨이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1978년부터 4년여 말보로 담배 모델로 활동했다. 14살 때부터 담배를 피운 그는 72살로 죽기까지 손에서 담배를 떼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듯 이 담배 광고에는 서부의 대협곡과 산, 사막,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말을 탄 멋진 목동이 등장한다. 흡연에 따른 해로움과 공포를 희석시키기 위한 조치다.

흡연은 폐암이나 조기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국내에서 제기된 개인의 담배회사 상대 소송은 모두 패소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구자와 대학교수 등이 흡연 폐해에 대한 ‘빅데이터’를 사용, 양자 간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이고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130만명을 모집단으로 19년 동안 추적, 관찰한 연구인 ‘흡연의 건강영향 분석 및 의료비 부담 연구분석’이 그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흡연자의 암 발생 위험도는 비흡연자에 비해 암 종류별로 다르지만 최대 6.5배 높다. 남성 후두암의 79%, 폐암의 72%, 식도암의 64%가 흡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으로 유발된 질환을 치료하느라 건보공단이 지출한 진료비는 2011년 기준 35개 질환에서 1조7000억원이나 된다. 이를 아낄 수 있다면 추가 재정투입 없이도 암과 뇌혈관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건보공단은 흡연에 따른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흡연자가 담배 한 갑을 살 때마다 354원의 건강증진기금을 부담하는데, 담배의 제조와 판매로 큰 이익을 내고 있는 담배회사는 별다른 부담을 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정부가 금연캠페인을 발표하자 대형 의약품체인점인 CVS가 미국 내 7600개 매장에서 담배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매출이 20억달러(2조원) 정도 줄지만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연합(EU) 등주요국에서도 담배규제 조치가 강화되고 있다. 흡연율이 줄고 있지만 주요국보다 여전히 높은 편인 우리나라에서 건보공단이 흡연 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추진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아쉬운 것은 정부당국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흡연폐해 예방과 금연정책은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정부 내 보건당국과 재정당국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지난해 보건당국이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넣으려고 건강증진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부처 간 협의가 잘 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재정당국이 담배 소비세라는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국민의 건강 악화와 의료비 증대라는 더 큰 손실을 방치하는 것은 온갖 위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취할 정책이 아니다.

흡연 폐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광주광역시, 시흥시, 서울의 강동구 양천구 등 일선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면 실효성도 더 커질 것이다. 정부가 시민사회의 이런 노력을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중립 입장이라도 취해야 한다.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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