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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분양의 그늘 ‘단전’ 되는 아파트…
일산 덕이동 모아파트 시행사 파산
체납세금 영향 계좌 압류
입주민 전기료 납부해도 연체처리
내달 연체땐 또 단전조치

아파트 시세 70 ~ 80%대로 급락
인근 주택시장도 악영향 심각

대주단 미분양 가구 공매추진불구
매매시장은 여전히 싸늘 ‘진퇴양난’


#“(주민 입장에선) 할 만큼 했습니다.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지난 27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A아파트. 불 꺼진 관리사무소에 홀로 앉은 황용권 입주민권익보호협의회장은 한숨만 쉬었다. 황 회장을 비롯, A아파트(2∼4단지 3316가구ㆍ현재 1726가구만 입주)입주자대표회장 등은 이날 한전 고양지사에 ‘추후 전기요금을 연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냈다. 전기공급은 같은 날 오후 가까스로 재개됐다. 그 전 1주일 간 이들 단지 공용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커뮤니티 센터는 운영을 중단했다. 28일부턴 29층 건물로 구성된 단지 내 엘리베이터도 멈출 판이었다. 


황 회장은 “입주민들은 매월 관리비를 냈지만 해당 금액이 한전 등에 납부되지 못해 결과적으론 연체된 것”이라며 “다음달 20일까지 밀린 전기세를 못 내면 또 단전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꼬박꼬박 공과금을 내 온 주민들이 전기료를 체납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왔다? 이 아파트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주택사업 부실과 미분양의 여파가 일산에 있는 한 대단지의 설맞이를 망쳐놓고 있다. 이를 책임졌던 시행사는 사실상 파산했다. 사업 지급보증을 섰던 대주단도 시행사의 체납세금 때문에 국세청에 ‘계좌 압류’ 조치를 당해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묶인 계좌가 사업ㆍ관리비 계좌라는 이유로 애꿏은 주민만 피해를 떠안았다. 


▶ 곪아 온 부실 = 문제의 발단은 2011년 입주 때부터 싹텄다. 당시 A아파트의 입주율은 40%대였다. 입주자가 과반에 못미쳐 입주자대표회의는 구성이 불가능했다. 대신 시행사인 B사가 미입주 가구의 공용전기료와 주민들의 공과금 납부를 관리했다. 미입주 가구 비용을 못 견딘 B사는 사실상 파산한 상태다. A아파트 사업관계자는 28일 “2011년부터 지금까지 시행사가 실질적으로 책임진 건 미입주자 관리비 37억원 중 2억원 정도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후 사업의 지급보증을 선 대주단(우리ㆍ농협은행 등) 과 KB신탁이 A아파트의 부실을 대신 맡았다.

문제는 B사가 체납한 800억원 규모의 법인ㆍ부가세였다. 국세청은 작년 3월 이를 추징하기 위해 대주단의 사업비계좌를 압류했다. 이는 주민들의 공과금을 관리하는 계좌이기도 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입주민들의 관리비가 한전 등으로 흘러가지 못해 체납되기 시작했다. 대주단은 이에 따른 A단지의 단전ㆍ단수 가능성 등을 법원에 탄원해 11월 ‘압류처분무효’ 통보를 받고 국세청도 압류를 풀어줬다.


그러나 한달여 후(12월 말) 국세청은 KB신탁 및 대주단에 ‘채권가압류’ 조치를 다시 취한 상태다. 이는 세금이 밀린 B사의 자금인출권에 대한 압류였다. 시행사는 대주단의 관리를 받는 상태로, 자금인출권 행사가 가능하다. 국세청은 이 권리도 일종의 채권으로 본 것이란 분석이다.

▶ 주민 피해 ‘눈덩이’, 인근 주택시장도 ‘만신창이’ = 대주단과 국세청의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주민 피해는 점점 늘었다. 주민들과 한전 등에 따르면 입주민(1726가구)의 전기료는 작년 3월이후 연체와 납부가 반복됐다. 한전 고양지사 관계자는 “A아파트는 월 2억원 정도의 전기세를 10월부터 3개월 연속 체납했고, 현재 4억3000만원 정도 미납상태”라며 “(향후) 또 미납하면 체납액은 6억원으로 늘고, (1월에 이어)2차 단전도 검토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A아파트를 운영하는 관리업체 직원들도 자금 지급이 끊겨 수개월 째 급여가 밀린 상태다. A아파트 4단지의 한 운영직원은 “직원 대부분이 급여 연체를 감당 못 해 신용불량자 상태”라며 “필수유지 업무를 뺀 전기ㆍ방재 관련 인력등은 사실상 없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시세는 바닥을 기면서 주변 시장 분위기도 안 좋아졌다. 덕이동 B공인 관계자는 “A아파트 매매시세는 최초 분양가(3.3㎡ 당 1450만원)의 70~80%로 떨어졌다”며 “그나마 거래량도 월 1건 미만으로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미분양이 여전히 많고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희박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덕이동 인근 공인중개업소들은 저마다 ‘○○ 단지 할인분양’ 등의 광고판을 걸고 있었다.

▶ 해결책 없나 = 대주단은 현재 A아파트의 미입주 물량을 공매할 계획이다. 입주하지 않은 1590가구 분양자를 대상으로 계약금 10%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부과한 후 입주의향서를 다시 받아 분양가 대비 75%로 할인해 재분양하는 방식이다. 계약은 했지만 안 들어온 가구를 사실상 미분양으로 간주하고 할인판매로 돈을 확보, 관리비 문제를 해결한는 방침이다. 그러나 기존 입주민들은 대주단이 빠른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주민 김 모(42)씨는 “국세청 가압류가 잠시 풀렸을 때 대주단은 미입주가구 관리비를 내는 대신 자신들의 비용처리에만 몰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기대와 달리)수도권 미분양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비단 A아파트의 사례로 한정하긴 어렵다”고 평했다.

윤현종 기자 /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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