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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정용덕> 제도변화는 ‘스마트파워’ 에 의해 이뤄진다
도로명 주소 등 새 제도도입
공권력 행사만으로 성공 어려워
정당성 확보위해 연성권력 활용도


설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경기침체 중이지만 지난주부터는 물동량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모레 수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는 금년도 첫 번째 ‘민족 대이동’이 전개될 것이다. 이미 4주 전에 2014년을 시작하면서 모두들 한 차례 새해 인사들을 나누기는 했다. 그러나 ‘갑오년’이니 ‘청말띠’니 하는 개념들은 역시 음력으로 이야기해야 제맛이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유교권 나라들에서는 우리처럼 모두 음력설을 쇤다. 중국과 대만은 무려 2주간의 춘제(春節)를 즐기는데, 그 유래가 재미있다. 중국의 땅이 워낙 넓다 보니 고향에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오고 가는 데 각각 1주일씩 요하는 귀성객들을 위한 기능적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양력설을 쇠기로 방침을 정했다가 포기했던 역사도 흥미롭다. 100년 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6년 1월부터 연호를 ‘건양(建陽)’으로 정하면서 양력을 중심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그 무렵에 단발령 등 일본의 내정간섭에 대한 반발로 국민들이 양력설을 ‘일본 설’로 간주하면서 일이 꼬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도 양력설만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실제로 차례상을 차리고 어른들께 세배 드리는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였다. 이처럼 어정쩡한 실질적인 ‘이중과세’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정부 수립 이후 40년이 지나서였다.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했다가 1989년부터는 아예 ‘설날’로 공식화한 것이다. 북한에서도 양력설만 쇠다가 1989년부터는 음력설도 공휴일로 지정했다고 한다.

설 명절과 관련된 이와 같은 우여곡절은 이미 정착된 관습이나 제도를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는 소위 행정의 경로의존성(path-dependency) 개념의 전형적인 사례다.

기존하는 제도의 경로의존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제도를 빠른 시일 내에 정착시키려면 때로는 혁명 수준의 공권력 행사나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유인 제공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성권력(hard power)에 의거한 조치들도 그 정책의 정당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갑오개혁 직후에 양력설 제도화에 실패한 것은 일본에 의한 강압적 동형화가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에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인 1872년부터 양력설을 쇠는 전통이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천황 중심으로 집권화된 막강한 공권력에 더하여 서구화를 근대화로 동일시하며 추진한 정부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우리 정부가 새로운 제도들을 도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척관법을 폐기하고 미터법으로 바꾸려는 몇 년에 걸친 정부의 노력이 한 예다. 그러나 아파트 규모는 여전히 ‘평’ 단위로 이야기해야 비로소 이해가 쉽다.

또 다른 예로 최근에 우측통행 방식을 권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오가는 사람들 간의 더 많은 충돌을 유발하는 혼란스러운 단계에 있다. 동(마을) 단위 주소였던 것을 길 이름 주소로 전환하는 노력도 있다. 이 경우에 연간 3조3000억원의 사회적 순편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한국행정연구원의 추산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정착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민주화된 사회일수록 공권력의 사용이 어렵다. 따라서 경제적 유인책 같은 경성권력과 함께 설득을 통한 자발적 순응 등 연성권력(soft power)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양력설 정착에는 빠르게 성공했지만, 오늘날 영국식의 우측운전 방식은 바꾸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 일본이다. 제도 변화는 경성권력과 연성권력을 혼합한 영특한 권력(smart power)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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