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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홍길용> 그들이 ‘역사’를 필수로 보는 이유는?
조선의 최고 인재양성기관인 성균관의 교육과정은 구재(九齎)다.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예기(禮記), 춘추, (春秋),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을 재(齎)로 나눠 가르쳤다. 앞의 4과목을 사서재(四書齎)라고 했고, 이를 마쳐야만 다음 단계의 다섯 과목인 오경재(五經齎)를 배웠다. 오경재 가운데 춘추, 서경은 역사책이다. 시경도 옛 노래를 모은 책이니 역사를 모르고는 이해가 불가하다. 결국 조선 최고급 교육과정은 역경을 제외한 80%가 역사다. 중국에서도 역사는 핵심 교육 분야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최고의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다. 지도층이라면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의 삼사(三史)는 반드시 통달해야 했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로마에서도 호메로스의 역사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등은 지도자 양교육의 필독서였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사는 그만큼 중요했다.

최근 국내에서 역사교과서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은 역사교과서의 이념문제로 갑론을박이다. 국사는 대입 수능 필수과목에 들지 못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 중에는 우리 역사보다 미국 유학을 위해 SAT 미국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의 점점 늘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지만, 문ㆍ사ㆍ철(문학, 사학, 철학)을 베짱이 취급한 지는 더 오래다.

삼성이 15일 삼성직무적성시험(SSAT)에 인문학적 소양, 특히 역사 이해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대학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삼성에 입사하기 위해 학생들은 역사공부를 해야 하게 됐다.

그럼 삼성은 왜 역사에 주목했을까? 삼성 측은 역사 평가에 대해 “사건이나 연대를 잘 외웠느냐가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세계관을 평가하겠다는 출제방침이다. 역사책 몇 권 달랑 읽는 차원을 넘어 역사의 흐름이 어떠했고, 그 기록의 행간에는 어떤 뜻이 숨어 있는지 고민해 보라는 뜻이다.

요즘 한창 관심을 받고 있는 창조적 혁신도 어찌 보면 역사에 답이 있을 수 있다. 로마제국을 유린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알렉산더 3세의 전기에서 알프스를 넘을 아이디어를 얻었고,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이 한니발에게서 이탈리아 원정의 실마리를 찾았다. 1453년 전함을 산 넘어 이동시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1438년 베네치아 군이 소함대를 육상으로 수송한 작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임진왜란 중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 쇠사슬을 설치해 왜군을 격파한 것은 한 세기 전 동로마제국이 금각만(金角灣)의 좁은 해협을 쇠사슬로 봉쇄해 적 해군을 막은 사례를 닮았다. 신의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지만, 인간의 창조는 역사에서의 배움에서 비롯된다. 혁신으로 역사를 바꾼 숱한 위인들의 애독서 목록에 역사 서적이 절대 빠지지 않는 이유다.

한편 요즘 한창 논란이 많은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해 삼성의 SSAT가 어떤 접근을 보여줄지도 관심거리다. 경우에 따라서는 글로벌한 시야를 가진 삼성의 잣대가 역사교육에 ‘글로벌’한 새 기준을 마련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홍길용 재계팀장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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