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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한상완> ‘쿠오 바디스’ <Quo Vadis:어디로 가시나이까> 韓銀
과도한 물가 상승은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민 생활의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경제가 순항을 하다가도 과도한 물가 상승 때문에 성장기조가 꺾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도 발생하면 그때는 참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근한 예로 남미 일부 국가들이 외환위기로 들어간 배경이 됐다. 심하게는 정치적 격변을 초래하기도 한다. 히틀러의 집권 배경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었다. 오죽하면 히틀러를 ‘물가의 의붓아들(stepson of inflation)’이라고 부를까.

항상 고물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가가 너무 낮아도 문제가 된다. 물가가 낮으면 생활비가 적게 들어서 좋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이 더뎌서 소득이 늘지 않고 고용 창출이 부족하다는 의미도 된다. 미국의 경제학자 오쿤이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하여 고통지수(Misery Index)를 만든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물가가 낮을 때는 실업률이 높아져서, 반대로 실업률이 낮을 때는 물가가 높아져서 경제적 고통이 커지게 된다.

저물가가 장기화되는 경우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소위 저물가-저성장의 ‘디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데, 경제가 디플레이션 함정에 한번 빠지면 헤쳐 나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다소 충격이 오더라도 긴축적 통화 및 재정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 반대로 디플레이션은 백약이 무효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일본이 20년을 디플레이션 함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런 이유다. 아베노믹스와 같은 극약 처방을 쓰고도 디플레이션 탈피를 확신하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물가 관리는 상방과 하방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중기 목표를 2.5~3.5%로 밴드를 두고 있는 것이 그런 이유다.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적정 물가는 평균 3% 정도이며, 상하한 폭은 가급적 3.5%를 넘지 않고 또 2.5%를 밑돌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중기 목표에 따르면 3.5% 넘는 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것이고, 2.5%를 장기간 밑돌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물가가 저물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기준으로는 2012년 6월 이후 19개월째 2.5%를 밑돌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1% 내외의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다. 근원물가는 더 심각하다. 2012년 3월 이후 22개월째 하한선을 밑돌고 있다. 그러나 2013년 중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단 한 차례 단행하는 데 그쳤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금리를 인하하기가 그리 쉬운 여건은 아니다. 1000조원대로 급증한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까 봐 걱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역시 이유가 된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가를 높여서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줄 생각을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정부와 정책 공조를 통해서 미시적인 정책으로 억제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이때에 미리 금리를 낮춰 놓아야 인상 여력을 확보하는 셈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일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구조 문제나 성장잠재력 어느 것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요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통화신용정책은 디플레이션 상황을 상정하여 구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에서는 지금의 저물가는 걱정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미국의 테이퍼링이 종료되고 나면 금리 인하의 기회조차 없어지게 될 텐데.

물가와 금리가 제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쿠오 바디스(Quo Vadisㆍ‘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외칠밖에.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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