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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집단적 무지와 문화재청장의 정치력
[헤럴드경제=함영훈 라이프스타일부장] “유형문화재의 경우, 국가는 일정한 돈을 보관자에게 제공한다. 문화재의 파괴,절도,위협이 가해진다고 판단될 때, 보관자는 국가로부터 문화재 보호를 위한 비용, 병력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같은 혜택을 주었음에도 문화재가 도난,파괴,소실당할 경우, 보관자는 국가에서 받은 돈을 전액 반환하며, 일정 기간 사회봉사 및 교도소 수감 조치된다.“

‘안타깝게도’ 현행법이 아닌, 한 포털 사이트 가상공화국 카페의 문화재보호법이지만, 요즘 같해선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13일 오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 화재 소식을 접하면서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했다. 지난달 4일, 2010년 6월에 이어 최근 4년간 하회마을에서만 세 번째이다. 우리 역사의 숨결이 담긴 문화재 화재는 ‘사고’가 아니라 책임이 뒤따르는 ‘사건’으로 인식해야 옳다. 웬만한 문화재 안내문 마다 적혀있는 사고와 중건 기록이 지겹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고라는 인식은 불가항력이라 치부해버리는 정신적 ‘해이(解弛)’를 낳는다. 문화재에 관한한 우리는 집단적 무지와 무기력상태일지도 모른다.

문화재 손실의 현대사를 돌아보면, 태풍 등 전채지변, 방화, 누전, 관광객 또는 관리자의 실화 등이 주요 원인을 차지한다. 1986년 김제 금산사, 2002년 서울 봉은사, 2003년의 함양 농월정, 2006년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서장대, 2008년 국보1호 숭례문, 2010년 범어사 화재는 방화로, 2003년 원주 구룡사의 불은 전기누전으로 드러났다. 2005년 낙산사의 불은 이 지역 산불이 옮겨붙은 것이고, 지난해 천년고찰 중화사 화재 등은 실화(失火)로 추정되고 있다. 국보30호 분황사석탑, 국보 109호 군위 삼존석굴의 담 또는 석축 유실은 태풍때문이었다.

▶사진출처=123RF (http://www.123rf.co.kr)

관리자들에게 변명의 여지는 있겠지만, 결국은 방화-방풍 벽 설치, 방염 처리, 정기 정밀점검 등을 통해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부족했고, 뚜렷한 사명감도 없었으며, 상시적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할 수 있는 인재(人災)들이다.

숭례문이 전소되던 2008년, 문화재청, 소방방재청, 가스공사, 전기안전공사 대표들이 창덕궁 경내에서 ‘문화재 안전지킴이 협약식’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런 ‘쇼(show)’가 있고 나서도 문화재 소실은 계속 이어졌다.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 국보 18호 부석사 무량수전과 국보 19호 부석사 조사당에는 불꽃 감지기가 작동 불능 상태였고, 수많은 목조문화재 중 58개를 제외하곤 자동 화재속보 설비가 제대로 달려있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동 하회마을은 문화재로는 드물게 화재 경계지구로 지정됐지만, 지정 이후에도 불은 두 차례나 나버렸다.

부실 투성이 4대강 공사 와중에 문화재 보존지역이 포크레인에 찍혀도 ‘찍’소리 못내던 소관 기관의 복지부동에서 우리는 ‘자세’ 문제를 다시 한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법륭사 금당벽화가 불탄 날(1949년)을 계기로 1월26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정하고 민관이 참여하는 문화재 진압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주요 문화재엔 첨단 방재 시스템이 구축되고 전문관리 인력이 상주한다.

문화유산이 가장 잘 보존된 이탈리아 로마는 콜롯세움(사진) 등 문화재에 대한 철저한 진단과 조사로 붕괴 부식 염려가 있는 부분을 미리 손 보고, 문화재 주변 통행자에 대해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예의주시하며, 복원때에도 철저한 고증을 거친다. 문화재인 대법원 건물 외벽 청소를 하려하자 훼손을 우려한 시민과 언론이 나서 가로막기도 한 일화는 문화재에 대한 시민 의식이 얼마나 성숙돼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프랑스가 1962년 재정한 초강력 문화재 보호법에는 문인이자 문화장관이던 ‘앙드레 말로’의 이름이 붙여져있다. 역사적인 도로나 마을, 고고학적 매장물이 있는 지역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존한다.

미국의 민간 문화재보존운동 재단(Municipal Art Society)은 우리 국민에게 큰 경각심을 준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이 재단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내거나 기업의 후원을 유치해 뉴욕의 문화재를 지키고 복원하는 일을 한다.

문화재 보호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치밀하고 실증적인 전략을 짜내는 능력 이외에 ‘선의의 정치력’도 갖추어야 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수호를 위해 경제,사회활동에 제약받을 문화재 관리자를 잘 달래고, 국민의 동참과 이해를 유도하며, 다른 행정부처와 입법부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소신도 없이 “작은 외청일 뿐"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지운다면, 앞으로도 될 일은 없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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