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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강우현> 어머니날 살리기
마흔을 갓 넘긴 어느 날, 어머니께서 혼잣말처럼 “네가 태어났을 때 백일 동안 새벽마다 강보에 싸안고 밖에 나가 별을 보여주었지.” 무심코 내뱉으신 한마디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 산골 하늘에 빼곡히 차 있는 새벽별을 보면 총명해진다고, 첫닭이 울자마자 장독대 앞에서 아기를 안고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늘에 별이 총총, 근데 그게 아이가 총명해지는 것과 무슨 상관일까. “아무 총이면 어떠냐? 잘 맞으면 되지.” 논리적으로는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내가 왜 상상력이 절실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긍정의 고향’이다. 환갑을 넘긴 자식에게도 “밖에 나가면 차 조심해라.”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이가 어머니고, 나쁜 일은 아예 전하고 싶지 않은 이가 어머니다. 나이가 들수록 순종의 미덕으로 다가오는 어머니의 존재,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싶어지는 긍정의 고향이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어머니를 떠올리면 팔십 노인도 눈물을 글썽거리게 한다. 착한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마음의 고향, 어머니는 생명과 사랑의 근원이라고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어머니 정신을 중심으로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고 조정해 보면 어떨까? 어머니를 통해 새로운 소통문화를 이루겠다고 충북 충주시가 ‘어머니 나라’를 선포하기도 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아.’ 여성에 대한 배려가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이런 어머니의 존재가 왠지 빛바래 가는 듯하다.

한때는 치열한 교육열 탓에 치맛바람의 상징으로 왜곡된 적도 있었지만, 어버이날 모처럼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거나 선물을 드리는 풍경은 아름답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모습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야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를 함께 기리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어버이날, 다문화가정이 급격히 늘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의 시대감각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어머니날을 되살릴 때다. 우리나라는 1956년 국무회의에서 매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다가 17년 후인 1973년 3월, 어버이날로 개칭했다. 효도사상을 앙양하고 전통 가족제도의 계승과 발전을 이루자는 뜻에서 효행자와 모범가정을 포상하고 격려하자는 뜻에서다. 이날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리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종이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는 어르신들, 양로원을 찾는 정치인들의 얼굴 알리기에 더 많이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특히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만큼, 어버이날 어떤 풍경사진들이 언론에 소개될지 짐작이 간다. 미국과 중국, 일본, 캐나다는 5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 어머니날이다. 중국과 미국, 일본은 6월의 세 번째 일요일로 아버지날을 따로 정해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민간단체인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1992년 어린이날 70주년을 맞아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처음 제창한 5월 1일을 아버지날로 정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존재를 함께 기리자는 뜻에서 어버이날로 개칭한 이유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다문화가정과 결손가정이 늘어가는 고령화사회에서는 비현실적인 면이 없지 않다. 올해 어버이날이 오기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미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와 여성의 역할을 재해석하고 어머니날을 되살리는 문제를 적극 검토할 때다. 전통적인 미덕인 효를 일깨우고 가정의 화목을 다지면서 어머니 정신으로 사회의 갈등을 치유한다는 차원에서.

강우현 상상디자이너/남이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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