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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우리들의 ‘시네마 천국’

영화감독이 뱀장수에게 60만원을 건네고 극장에 뱀을 풀었다. 극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영화 상영이 중단됐다. 꽃뱀과 물뱀처럼 독이 없는 뱀이어서 불상사가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미개한 나라에서 벌어질 법한 우화 같은 이 얘기는 1989년 서울 한복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스크린 쿼터로 한국영화가 그나마 극장에 걸렸던 그 시절, 할리우드가 직접 배급에 나서자 영화인들이 ‘문화 침탈’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던 와중에 사건이 벌어졌다. 뱀뿐 아니라 가스통도 동원될 정도로 충무로의 위기감은 상상이상이었다.

일요일이던 12일 서울 시내 한 극장에, 아침 일찍 조조로 영화 ‘변호인’을 보러 갔다, 표가 없어 돌아서는 길에 뱀을 풀어 영화감독은 물론 뱀장수까지 구속됐던 그 시절 슬픈 얘기가 떠올랐다.

요즘 1000만명이 넘는 한국영화는 새삼스럽지 않다. ‘변호인’도 1000만명 영화에 이름을 올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지난해엔 ‘7번방의 선물’ 1281만명을 동원한 것을 비롯해, 흥행 10위 안에 한국영화가 8편으로 외화를 압도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야구 정규리그 관람객이 작년에 644만명이었다. 작년 한국영화 흥행 순위 6위로 청춘스타 김수현의 티켓파워가 힘을 발휘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1편의 관람객(695만명)이 봄부터 가을까지 프로야구 구장을 찾은 사람들을 앞설 정도로 한국영화는 만개하고 있다. 작년 영화 누적 관객 수가 처음으로 2억명을 달성했고, 한국 영화 관객은 2년 연속 1억명을 돌파했다. 한국의 경제활동인구가 2623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1000만명 영화가 나오고 누적관객이 2억명에 달한다는 것은 한국이야 말로 ‘시네마천국’이라 얘기 할 만하다.

하지만 시네마천국이란 은막 뒤에는 우리의 답답한 자화상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많아지는 것이야 탓할 게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의 놀이문화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오전 9시도 되지 않은 휴일에 사람들로 빼곡한 극장의 풍경은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1000만 관객영화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사리진다는 것의 다른 얘기란 점도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다양한 장르와 관객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고 있느냐는 점은 한국영화의 압도적 흥행에서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또 늘 문제가 되고 있는 박봉의 스태프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관객규모에 걸맞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은 의문이다. 한국영화가 여전히 한국인의 정서에 기대어 방화에 머물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렇다 해도 한국영화의 오늘은 자랑스럽다. 문을 열면 망한다고 했지만 거꾸로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개방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됐다는 교훈을 얻은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앞으로 영화인들이 꽃뱀을 극장에 푸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꽃뱀’이 한국영화를 ‘용’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전창협 디지털콘텐츠 편집장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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