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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문제는 후진적 투자문화
“금리가 높다면 그만큼 위험도 크다는 소리다. 이걸 망각하면 사고가 생긴다. 동양 사태도, 그 이전의 저축은행과 대우채 파동도 그래서 터진 것이다. 제도적보완보다 더 급한 건 성숙한 투자문화 정착이다.”


동양 사태 피해자 이모 씨의 사연을 들어보면 안타까움과 분노가 함께 치민다. 세계 몇 번째 경제 강국이니 하면서 금융 감독과 상품투자 시장 수준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이 씨는 중증장애를 앓는 딸이 훗날 혼자 살게 될 때에 대비해 평생 모은 29억원을 동양증권에 맡겼다. 그러나 이 돈은 그룹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에 투자돼 지금 큰 낭패를 겪고 있는 것이다. 절박한 심정에 소송을 통한 법적 해결에 나섰지만 원금을 건질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더 분통이 터지는 것은 동양증권의 행태다. 절대 안전한 원금보장 상품을 찾는다는 이 씨를 꼬드겨 신용등급이 바닥인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팔아치웠다. 그나마 투자설명서나 상품안내서조차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투자 회사가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몰리자 ‘동양증권 사장이 책임지고 신용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거짓 메일까지 보내 이 씨를 안심시켰다. 그 물증도 있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불완전 판매 정도가 아니라 사기다.

어디 이 씨뿐이겠는가. 숱한 피해자들이 집 살돈, 노후 자금, 장사 밑천 등 생때같은 돈을 날리게 생겼다. 금융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사례만도 1만3000명에 2만8000여건에 이를 정도다. 금융당국은 불완전 판매 여부를 가리는 ‘국민 검사’에 착수했고, 위법이 발견되면 해당 증권사에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며 뒤늦게 수습에 분주하다. 결과가 주목되지만 그렇다고 원금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한심한 사태가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간 대우채 환매사태, 저축은행 후순위채 파동 등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왜 툭하면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성숙하지 못한 투자문화 탓이 크다.

우선 우리 투자자들은 고금리 유혹에 약하다. 하긴 금리 많이 준다는데 싫어할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금리의 달콤함 감춰진 가시와 독(毒)을 간과하기 일쑤다. 이런 약점을 비집고 일부 금융회사가 고수익을 미끼로 불량 상품을 내밀면 투자자는 덥석 물게 된다. 관련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진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고,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의 감시체계는 느슨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표를 의식한 정치권까지 가세해 판을 키운다. 동양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투자 문화의 현 주소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과 징벌적 배상 도입 등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법적 제도적 장치가 아무리 잘 갖춰져도 투자문화가 따라가지 못하면 불행한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 가격과 품질을 모두 만족시키는 재화는 없다는 의미다. 금융상품도 마찬가지다. 수익성이 높다면 그만큼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안전한 회사에 투자해야 한다. 회사도 튼튼하고, 금리도 높은 상품은 절대 없다. 이게 시장의 생리고 투자의 법칙이다. 동양을 포함한 일련의 금융 파동은 이런 기본 원칙을 망각한 데서 비롯됐다. 후진적 투자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자본시장이 더 성숙하고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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