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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정덕상> 화근(禍根)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국정운영을 하려면 현안에 대해 적당한 시기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상식인데 번번이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국내정치에서 통치권자의 전략적 모호성은 혼란을 초래해왔다.


“국정원 대선 개입이라는 5만5000여건의 트윗글은 국내에서 4개월간 생산되는 2억2800만개 중 0.02%, 게다가 직접 증거라고 제시한 2233건 중 6%인 140건만 댓글이다. 나머지는 다른 글 퍼나르는 리트윗, ‘좋아요’ 같은 반응이라고 한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폭포에 물방울 같은 댓글로 인해 대선 판도가 바뀐 것처럼 야당이 야단법석,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거품을 물었다. 틀리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표 차이는 108만표나 된다. 국정원 직원이 썼다는 쓰레기 글을 보고 지지후보를 바꿀 만큼 수준 낮은 국민도 아니다. 그런데 왜 대선불복이니 부정선거니 퇴행적 사태가 벌어지고, 검찰조직은 붕괴 일보직전까지 가고 있는가.

국민대통합을 내건 박근혜정부 출범 8개월, 일각에서 촛불집회 때문에 초반부터 국정 동력을 잃고 5년 내내 조롱거리가 됐던 MB정부와 비교되기 시작하는 건 안타깝다. 10개월 전쯤,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사과한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인 만큼 엄정 수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한마디 했다면 스텝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정치평론가들에게 들어봤다. 작금의 정국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전 정권과 같은 뿌리라서 무거운 마음이라고 사과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가. 야당에 밀리면 안 된다는 강박감, 밀어붙이면 된다는 교만함이 읽힌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효율적으로 국정운영을 하려면 현안에 대해 적당한 시기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상식인데 번번이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 통치권자의 전략적 모호성은 혼란을 초래해왔다. 분명한 메시지가 없으면 아랫사람은 대통령에게 해를 끼칠까 지레 겁을 먹고 방어막부터 친다. 뭔가 있는데 숨기고 덮으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증폭되고, 정권과 국민 간에는 불신의 고속도로가 생기게 된다.

국정원의 일탈은 MB정부에서 벌어졌지만, 의혹과 불신을 키운 책임은 현 정권에도 있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팀에 대한 외압은 있었는지, 수사기밀이 어떻게 새누리당에 유출됐는지, 국정원장은 체포된 직원들에게 진술을 거부하라고 지시했는지는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빚진 일도, 덕 본 것도 없다는 말로 사태가 수습될 단계는 지났다. 정상회담 대화록까지 조직의 명예를 위해 공개한 국정원장이 피의자를 옹호하고 있다면, 이런 행위야말로 우리나라를 30년 전쯤으로 후퇴시키는 고장 난 시계와도 같다. 중추사정기관인 검찰의 공백을 방치하는 것도 누군가의 직무유기다. 어쩌면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할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는 사회적 논란이 큰 사안들을 앞에 두고 있다. 좌편향 교과서 바로세우기, 전교조의 합법노조 취소, 복지재원을 위한 증세 논쟁 등은 특히 이념적ㆍ계층적 잣대에 따라 정국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초반부터 힘이 빠지면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대선이 끝난 즈음, 여권의 핵심인사는 사석에서 대통령의 소통부족 우려에 “MB와는 다르다. 5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야당대표까지 지낸 의회주의자”라고 일축했었다. 

jpur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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