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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박승윤> 기업에 힘 자랑하는 국정감사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고 감시하고 시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기관의 역할이다. 필요하다면 기업인을 증인으로 부를 수있지만 이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참고인에 머물러야 한다.


국회의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지난 14일 시작된 올 국감은 기업 청문회 분위기다. 국감 대상인 기관장은 뒷전이고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호통 치는 모습이 언론에 조명되고 있다. 올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200명에 육박, 2년 전의 80명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CEO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기 위해 의원이나 보좌관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여의도를 찾아 의원 보좌관에게 올해는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하니, 하루 몇 시간 왔다 가면 될 텐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더라고 전했다.

국회로서는 큰일이 아니지만 산업 현장에서 일분일초를 아껴 뛰어다니는 경영자에게는 사실상 하루를 투입하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물론 동양 사태처럼 국민적 관심이 큰 이슈가 있을 때는 해당 기업도 국감 증언을 당연시할 것이다. 문제는 200여명 가까운 CEO가 한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려 서너 시간씩 대기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앉아만 있다가 귀가하는 기업인도 상당수인 게 우리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지적하면 의원들은 미국 의회도 청문회에 대기업 CEO를 불러 추궁하는데 왜 우리 언론만 대기업을 역성드냐고 비판한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 미 의회는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월가의 내로라하는 CEO들을 청문회에 출석시켜 추궁했다. 2010년에는 일본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대규모 리콜 사태와 관련해 미 의회에서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문제는 국회가 무차별적으로 기업인들을 부르고 증인 채택을 무슨 힘자랑하듯, 거래하듯 한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여당의 원내대표가 나서 무분별한 증인 신청이나, 증인들을 망신주고 죄인 취급하는 식의 활동은 국회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하겠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제헌 헌법에 명시돼 있던 국정감사는 1972년 유신헌법 때 폐지됐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시녀로 전락했던 시절이었다. 이를 국민들의 힘으로 부활시켜 1988년 제5공화국의 비리를 파헤치는 국정감사가 열렸다.

그로부터 25년. 국회는 장관 후보자를 검증해 낙마시키고, 정부 발의 법안을 뭉갤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 그 권력을 제대로 표출하는 현장이 국정감사다. 국감을 받는 기관들은 의원들에게 수십톤에 달하는 요구 자료를 제출한다. 힘을 가지면 이에 걸맞은 절제와 품위가 필요하다. 제 역할을 망각하고 힘을 남용하다 보면, 부메랑을 맞는다.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고 감시하고 시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기관의 역할이다. 국민들이 국회에 국정감사권을 부여한 것은 정부가 이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파악해 정책 방향타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필요하다면 기업인을 증인으로 부를 수 있지만 이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참고인에 머물러야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온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노사가 난제들을 스스로 헤쳐 나갈 테니 이제 그만 좀 불러 달라”는 것이다. 

parksy@heraldcorp.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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