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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홍길용> 역린 건드리는 박근혜정부
대통령이 정부와도 소통을 제대로 못하는데 국민과 소통이 잘될 리 없다. 거짓말과 억지주장은 불통의 조짐이다. 한비자는 거꾸로 난 비늘(逆鱗)’을 건드리면 오히려 주인을 죽인다고 한다. 단언컨대 소통을 가장한 ‘기만’은 가장 확실한 ‘역린’이다.


“설득의 어려움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본마음을 알고, 자기의 의견을 그 마음에 얼마나 맞출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편의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국민 각자가 낸 보험료 외에 정부 노력으로 국민께 더 많은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게 포함돼 있다.” 9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정부 노력’이야 기금운용과 관리를 사실상 정부가 맡고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보장’이란 말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정부의 지급보증이 법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논리다. 2060년이면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란 우려에도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이런 발언도 했다.

“(개인이) 부담한 보험료에 비해 최대 5.5배에서 1.3배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액을 지급한다.”

대통령이 확언할 정도로 건전한 국민연금이라면, 정부가 지급보증을 꺼릴 이유도 없어야 한다.

공무원연금 가입대상인 박 대통령이나 경제관료들은 잘 모르겠지만,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만과 불안은 상상이상이다. 기초연금 못 받게 된 소득상위 30% 노인들이야 국민연금을 낸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으니 대통령의 공약지연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일만도 하다. 그런데 기초연금 대상도 아닌데 국민연금 오래 냈다고 차별받을 비(非)노인들은 뿔이 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국민연금 납부액보다 급여액이 적을 수 있다. 심지어 기초연금 재원인 세금도 주로 이들 몫이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예전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 돈인 국민연금을 ‘쌈짓돈’으로 여겨왔다. 정부 보유 자산을 팔아 공적자금 회수하는 데 동원하자거나,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 압박용으로 활용하자는 식의 논의들이다. 가입자인 국민들에게는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마름이 지주행세하려는 꼴불견이다.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상대의 본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맞춰야’한다. 지난 세제개편안 파동 때도 드러났듯이 국민들의 본마음은 ‘뭔가 해달라’라 아니라, ‘기만하지 마라’다. 세금 더 내라면서 증세가 아니라고 우기고, 보장도 못할 국민연금을 마치 보장해줄 듯 말을 꾸미지 말라는 요구다. 이런 점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는 어찌 보면 박 대통령에 대한 항명(抗命)이지만, 달리 보면 국민에 대한 순응(順應)일 수 있다. 사실 소통 잘하라고 뽑은 게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다. 소통을 잘한 결과라면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을 갈아치우는 게 당연하다. 명령에 불복한 보건복지부 장관도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소통이 안 된 결과 감사원장, 검찰총장에 이어 복지부 장관까지 물러난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대통령이 정부와도 소통을 제대로 못하는데 국민과 소통이 잘될 리 없다. 거짓말과 억지주장은 불통의 조짐이다.

한비자는 용(龍)은 순한 동물이어서 잘 길들여 탈 수도 있지만 딱 하나 있는 ‘거꾸로 난 비늘(逆鱗)’을 건드리면 오히려 주인을 죽인다고 한다. 단언컨대 소통을 가장한 ‘기만’은 가장 확실한 ‘역린’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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