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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박주영의 부활을 기대하며
추석 전날 본가에서 집안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사진한 장을 발견하게 됐다. 20대 후반의 내 모습이었다. 중력(重力)이 상실된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죄를 진 것처럼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왔다. 한마디 고백이 입가에 맴돌았다. ‘그래 참 많이 늙었지, 정말 미안해’라고.

그 후 박주영의 기사가 실린 사진을 보게 됐다. 아스널의 2013-2014 시즌의 1군 단체사진이었다. 28세 청년의 얼굴이 아닌 지금의 내 모습과 그가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젊다는 것은 청초(淸楚)함 일 것이다. 열정과 패기와 순수로 자신의 도전사를 감행할 그럴 때인데, 그는 지금 깊은 시름에 차있다. 팬들은 다가올 월드컵에서 그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어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리그의 릴과의 협상이 하루 일찍 체결돼서 경험을 더 쌓은, 2년 후쯤 빅리그로 이적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아르센 벵거 감독이 그를 선택하지 말았다면 결과가 어찌 됐을까. 현재의 시련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아스널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꽉 찬 나이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단지 AS모나코의 좋은 기억만 갖고 순진하게 무대에 올랐던 것이 패착이었다. 더군다나 셀타비고로의 임대도 소득이 없었다. 


여러모로 이적시점이 한 박자 빨랐다. 벵거 감독은 2005년 이후 8년간 우승이 없었다. 리그 우승 3회, 컵 대회 4회 우승의 금자탑이 팬들에게 흘러간 노래로 치부될 위기였다. 누군가를 데려와야만 했다. 심난한 저울질 끝에 최고보다 최선에 집중하고 말았다. 프로답지 못했다. 데려갔으면 활용도를 찾았어야 했다.

서로 악수하는 손이 엇갈렸다. 오른손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은 왼손을 내밀었다. 감독은 경기에 투입하면 바로 결과로 이어지는 골잡이를 원했다. 박주영은 자신의 발 앞에 놓인 공에 더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공간을 창조하고 좌우를 흔들며 또 다른 기회를 창출하는 역할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독수리가 소리없이 날다가 정밀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채듯이 공격본능을 더 키웠어야 했다.

명석한 두뇌만큼 숫자에 밝은 감독은 오판을 만회하기위해 이적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박주영이 단칼에 거절했다. 중동의 오일머니보다 영국에서 승부를 걸고 싶다는 결연함을 보였다. 분명한 사실은 있다. 어떤 식으로든 기회는 온다는 것이다.

동료들의 경기모습을 놓치지 않고 복기하려는 긍정적 자세가 중요하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병사가 소일거리삼아 머릿속으로 매일 18홀을 돌아 결국 석방 후에 싱글 플레이어가 된 사례도 있다. 그만큼 상상력은 스트라이커에게 기본사항이다. 또한 격한 개인주의는 이시기에 누구에게나 금물이다.

등산로에서, 한가운데 서있는 어린나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뿐이다. 등산객중 누군가 가장자리에 돌을 둘러싸주는 시도를 해주면 죽지 않고 큰 나무로 자랄 수 있게 된다. 그가 누구인가.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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