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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어보(御寶)
영조의 원손 이산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영조는 이산이 네 살 때부터 ‘효경(孝經)’을 외우도록 했다.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게 효의 근본이라는 걸 알게 하려는 게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에 대한 회한을 품은 영조의 뜻이었다. 부친의 사랑 대신 할아버지의 애정을 받고 자란 정조는 영조가 세상을 뜨자 극한 슬픔에 물 한 모금, 미음 한 숟가락 들지 못했다. 대신과 여러 신하가 왕위를 이어받기를 청했지만 정조는 여러 날을 울기만 했다. 즉위날이 돼 대신이 어보(御寶) 받기를 청하자 여러 번 사양하다 의례복을 갖추고 4번 절을 한 뒤, 눈물을 흘리며 대보(大寶)를 받고 다시 4번 절을 올렸다. ‘조선국왕지보(朝鮮國王之寶)’라 새겨진 어보는 영조의 친필을 새긴 것으로, 어필을 새긴 건 이 어보가 유일하다. 


조선의 어보는 국가의례에서 왕과 왕세자, 왕후와 왕세자빈 등의 책봉과 존호 등의 국가의례와 국장과 부묘의례 때 해당 주인공에게 바쳐졌다. 어보는 주인공의 사후에는 종묘 신실에 영구히 모셔져 왕실과 국가를 지키는 상징이 된다. 도감 밑에 별도의 방을 두어 제작한 어보는 최상 품질의 옥이나 금으로 만들고 용이나 거북 모양의 손잡이를 갖춰 왕실 공예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전쟁 때 미국 병사에 의해 도난당한 문정왕후 어보가 60여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LA카운티박물관이 경매에서 사들여 소장해온 이 어보는 거북 모양 손잡이가 달린 금장 도장으로 종묘 제6실에 보관돼 있던 것이다. 이렇게 무단반출된 어보가 무려 47개다. 고종, 순종의 어보 등 미국이 반환한 4개와 이번 문정왕후 어보 1개 외에 42개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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