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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대산’ 아닌 ‘행산’을 떠나보자
‘즐산’ ‘풍산’ ‘대산’ ‘행산’….

아마도 일반인은 낯선 산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이는 산 이름이 아니라 약초와 버섯 등을 캐러 다니는 ‘꾼’ 사이에서 즐겨쓰는 그들만의 은어(줄임말)다. 실제 산약초 전문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방문하면 마치 보통명사처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풀어보면 안산은 ‘안전한 산행’, 즐산은 ‘즐거운 산행’, 풍산은 ‘풍성한 산행’, 대산은 ‘대박 산행’, 행산은 ‘행복한 산행’을 말한다. 버섯의 계절, 가을을 맞은 요즘 유행어는 물론 풍산과 대산이다. 단순히 친목과 건강을 위한 일반산행이 아니라 버섯 채취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산행이다.

필자 역시 추석 연휴기간을 포함해 최근 몇 차례 산에 올랐다. 강원도 홍천 산골로 들어온 지 햇수로 4년째지만, 아직 가을 송이와 능이버섯을 직접 채취하는 손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심 대산은 아니어도 풍산은 기대하며 높고 가파른 산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단 한 개의 송이와 능이도 발견하지 못했다.

올해의 경우 여름 고온현상으로 버섯이 흉년인데다 그나마 이미 부지런한 인근 마을주민과 외지 버섯꾼이 샅샅이 훑고 지나간 터라 내 몫이 남아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옛날부터 송이가 나는 자리는 아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또 부지런하지 못한 자는 송이를 만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시 얻은 값진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욕심을 앞세운 산행은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비록 한순간 풍산과 대산을 맛본다 할지라도, 그것은 즐산과 행산, 안산을 희생시킨 결과라는 사실이다.

욕심을 내다보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무리를 하게 되고, 이는 곧잘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또한 외지인(도시인)의 무분별한 원정 버섯산행은 임산물 채취권을 가진 현지 마을주민의 농외소득을 잠식하기 때문에 마찰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은 우리에게 봄부터 겨울까지 산약초와 버섯 등 선물을 듬뿍 안겨준다. 그러나 욕심을 낸다고 해서 이런 자연의 선물을 많이 취하는 것도 아니다. 묘하게도 풍산에 집착하던 필자 역시 욕심을 내려놓으니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송이는 아니지만 귀한 영지버섯을 만난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영지를 불로초라 여겼고, 양귀비는 이를 먹고 바르면서 아름다움을 유지했다고 전해온다.

근래 들어 풍산·대산을 겨냥한 각종 산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값진 약초와 버섯보다 산이 주는 더 귀한 선물이 있으니 바로 건강한 기운, 정기(精氣)다. 욕심을 앞세운 급한 산행은 이 정기를 흩뜨릴 뿐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 조용히 산의 정기를 호흡하며 산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건강과 활력을 얻게 된다. 청명한 이 가을, 대산 아닌 행산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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