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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마녀 사냥’ 희생자 추모 기념관이 주는 메시지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노르웨이 북동부 핀마르크(Finnmark)주 바랑에르 협만(峽灣)을 중심으로 형성된 해안도로는 경관이 수려해 이 나라 국립 관광도로 중 하나로 지정됐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디자이너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는 지난해 아름다운 이곳에, 멀리서 얼핏 보아 무엇인지 선뜻 알아차리기 힘든 기념물을 세운다. 교각 같기도 하고, 박물관 같기도 한 건축물이다.

이곳은 다름 아닌 16~18세기 마녀사냥 희생자를 추모하는 ‘스타일네셋 기념관’(Steilneset Memorial for the Victims of the Witch Trials: 사진)이다. 인근 러시아 접경지역인 바르되(Vardø) 지역에서 있었던 마녀사냥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함이다. 바르되는 노르웨이에서 몇 안되는 극지방 기후를 보이는 곳으로, 한반도로 치면 함경북도 아오지 같은 곳이다.

영국,프랑스 등에 비해 마녀사냥이 매우 적은 나라였지만, 17세기 노르웨이에서만 91명의 중하층 부녀자와 독거노인이 마녀라는 이유로 처형됐다.

마빈 해리스가 쓴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들춰보면, 마녀재판에 오른 희생양중 82%는 무기력한 노파나 하층계급의 중년여인들이었다고 한다. 당시 지배계층은 부패할대로 부패해 신뢰를 잃고 민생이 피폐해지자, 빈민층이 가난을 벗지 못한 원인에 대해 부패한 영주나 교회를 겨냥하기 보다는 마녀에게서 찾도록, 책임 전가 혹은 세뇌하려고 마녀사냥을 시작했다고 이 책은 고발한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jcg1405?Redirect=Log&logNo=120172890854
 디자이너 조창균 블로그 ’디자인을 상상하다'

당시 지배계층은 희생양으로 삼기 좋은 노파를 선택한 뒤, ‘세상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속였다'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를 뒤집어 씌웠다. 하지만 정작 혹세무민은 부패한 지배층이 저지른 것이다. 마녀사냥의 희생자들은 400년이 지나서야 복권됐다.

유학(주자학)을 관학으로 삼았던 명나라는 불교를 멀리했다. 명대 초기 환관으로, 문필은 뛰어나지만 거짓을 고하거나 주요사안을 은폐한 전력이 있던 환관 유약우(劉若愚)는 불교를 혹세무민의 종교로 배척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명 왕조 중기 이후 수, 당나라때 못지 않은 대중의 호응이 있자, 슬며시 압박을 늦춘다. 불교는 현재 세계 3대 종교이다.

1860년 기존 유교 불교 도참사상에다 토속 신앙을 결합해 동학(東學)을 만든 최제우는 숱한 사회 개혁을 설파했지만 창시한지 4년만에 혹세무민의 죄명으로 처형당했다. 동학혁명을 거친 뒤 최제우는 죽은 지 43년만인 1907년 순종 즉위때에야 사면된다.

요즘 정치판에 툭하면 혹세무민이란다. 여권과 보수파는 대선 부정개표시비, 세금폭탄 논란 등이 그렇다 하고, 야권과 재야세력은 국정원 대선개입의혹이나 NLL문제에 대한 여권의 해명 내용을 혹세무민이라고 한다. 특정 언론의 논조, 의약품의 효능, 살인 진드기의 위험성 등에도 혹세무민이라는 말이 등장할 지경이다.

혹세무민 공화국이다. 혹세무민이라 욕하는자가 혹세무민인지 그 반대가 혹세무민인지 헷갈린다. 능란한 언변에 선량한 국민은 언제 미혹될지 모른다. 사필귀정을 믿기엔 마녀사냥, 양심 억압의 결과는 너무나 길고도 참혹하다. 상식과 시비분별력을 갖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될 시기이다. 우리 사회가 혹세무민 때문에 많이 아프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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