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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틀러가 남긴 수채화에 가필을 해 전시를 열었다고?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유럽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성당을 그린 풍경화다. 고풍스런 성당 앞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지극히 평범한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린 이가 특이하다. 나치전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다. 히틀러는 비엔나예술학교에 입학을 꿈꾸던 미술학도였다. 그러나 불합격하면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히틀러의 이 수채화에 덧칠을 한 작가가 있다.

‘전복적인 블랙유머’로 가득찬 작업으로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큰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의 형제미술가 채프만 브라더스(Jake and Dinos Chapman)다. 이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했던 독재자의 수채화 13점을 약 2억3400만원에 구입했다. 그리곤 무채색톤의 히틀러 풍경화에 화사한 무지개를 집어넣고, 밝은 색조를 더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바꿔놓았다. 

아돌프 히틀러의 수채화에 무지개를 집어넣은 채프만형제의 작품. ‘If Hitler Had Been a Hippy How Happy Would We Be’.

히틀러의 꽃그림에는 예쁜 나비며 반짝이는 별도 그려넣었다. 그리곤 영국 런던의 유명화랑인 화이트큐브에서 ‘히틀러가 히피였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을까(If Hitler Had Been a Hippy How Happy Would We Be)’란 엉뚱한 타이틀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채프만형제가 손을 대자 작품값은 6배가 뛰어 14억원이 매겨졌다. 채프만 형제는 “이 평온하고 낭만적인 그림들을 그렸던 히틀러가 만약 비엔나예술학교에 무사히 합격했더라면 인류사의 가장 끔찍했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이들 형제는 스페인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가 말년에 제작한 에칭판화 ‘전쟁의 참상’에도 가필을 해 자신들의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한동안 “거장의 작품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이들은 “우리가 덧칠한 판화는 고야 사후에 제작된 세번째 또는 네번째 에디션으로, 시중에서 어렵지않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인간의 숨겨진 본능인 잔혹성을 환기시키는 일련의 작업과 같은 맥락의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채프만 형제는 19세기 무렵에 그려진 무명화가의 초상화들을 엉뚱하게 바꿔놓는 작업도 시행하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꽃그림에 나비와 무지개를 더한 채프만형제의 작품. ‘If Hitler Had Been a Hippy How Happy Would We Be’.

한 때는 막강한 권세와 부를 누렸을 상류층 인사들을 그린 낡은 초상화를 입수해 그림 속 인물의 코를 한없이 늘어뜨린다든지, 눈덩이를 까맣게 뭉개버리는 식으로 바꿔놓은 작업이다. 작가들은 “다락방이나 고서점 한구석에 쳐박혀 먼지만 풀풀 마시고 있던 버려진 초상화를, 우리가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셈”이라며 “인간의 숙명인 ‘소멸’을 다룬 연작"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채프만 형제의 엽기적이면서도 논쟁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The Sleep of Reason’전이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관장 유상덕)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2월 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채프만 형제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 지난 20년간의 작업여정을 살필 수 있는 작품 45점이 나왔다. 관람은 무료.

yrlee@heraldcorp.com

19세기 초상화 속 인물을 엉뚱하게 바꿔놓은 채프만형제의 작품. ‘One Day You Will No Longer Be Loved that it should come to this...’.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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