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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비통 커미션 작업한 채프만형제 “한국민화(까치호랑이)는 못봤지만..”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도발적이면서도 전복적인 작업으로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큰 이슈를 빚고 있는 영국의 현대미술가 채프먼 형제(Chapman Brothers)가 루이비통 코리아의 아트 토크에 참가했다.

채프만형제는 지난 22일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루이비통 코리아의 다섯번째 아트 토크의 주인공으로 참여했다. 루이비통의 아트 토크는 작가와 함께 작품세계및 예술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그간 한국에서는 작가 김혜련, 전준호, 자비에 베이앙, 스티븐 맥커리 등이 주인공으로 참여했다.

영국왕립미술학교 출신으로 1992년부터 함께 작업해온 제이크 채프만(Jake Chapman,47)과 디노스 채프만(Dinos Chapman,51) 형제는 ‘이성이 잠들 때(The Sleep of Reason)’라는 타이틀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개막된 전시 출품작에 얽힌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이들의 한국 첫 단독전시에는 그간의 작업세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주요작품 45점이 출품됐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져온 두 사람은 이성적 판단과 실천을 강요하는 계몽주의에 반기를 들고, 쇼킹하면서도 파괴적인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채프만형제는 자신들의 미학과 예술의 역사, 그리고 도덕 지상주의와 소비문화까지 다양한 이슈에 대해 대화를 풀어나갔다. 이날 아트 토크에는 송은문화재단 이사장인 유상덕 삼탄 회장, 조현욱 루이비통 코리아 회장, 김성희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 등 문화예술계 인사및 미술애호가 등 60여명이 참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초기 작업인 마네킹 시리즈는 한명의 조각상에 머리 두개를 이어붙이는 등 너무나 엽기적이어서 논란이 많았다.

▶맞다. 영국에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반발이 거셌다. 어떤 이들은 (이런 흉칙한 작업을 한) 작가들을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는 (체포되지 않은채) 무사했다. 한번은 우리 작업실에 도둑이 들었는데 작품이 너무 이상해서 그랬는지 그냥 빈손으로 가버렸다. 사실 나(디노스 채프만)도 마네킹이 갑자기 내쪽을 향하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어째서 그런 기이한 마네킹들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글쎄, 약을 먹고 약 기운이 떨어져서 했나? 헤헤, 농담이다. 사실 잘 모르겟다. 특별한 의미를 넣어 제작한 건 아니다. 불가사해한 인간 존재를 극렬하게 표현하려 한 것정도? 우리들의 작업은 그간의 경험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 ‘fuck face’라는 타이틀의 작업은 여성의 얼굴에 남성 성기가 붙어있어 많이 거북스러워들 한다. 그런데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한 작업이 아니다.

-어쨋거나 엽기적인 마네킹 작업으로 유명해지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런 셈이다. 두명의 여성에 머리는 3개, 한 여성이 가지고 있는 2개의 성기, 남성성을 보여주는 작업 등으로 이어졌는데 작업도 빠르게 변주됐지만 제목 붙이는 기술도 점점 늘더라. 갤러리스트들이 놀랄 정도로. 이들 초기작업은 컬렉터인 사치가 사갔는데,사치갤러리 수장고에 불이 나는 바람돼 모두 소실됐다. 대형화재였다. 그 바람에 제대로 전시도 못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업은 당신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학 다닐 때부터 고야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고야의 에칭 등을 차용하며 여러 작품을 제작했다. 고야 이전까지 작가들은 신성한 것만 다뤘지만 고야는 스페인내전을 호되게 겪으며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인간의 이성적 측면만 강조했던 기존의 계몽주의적 작업과는 달리, 인간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어 고야를 좋아한다. 그의 에칭서 영감을 얻어 순은 조각을 만들었고, 이후로도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됐다. 인간의 잔혹함을 다룬 시리즈다.

-고야의 오리지날 에칭 작업에 손을 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고야의 사후판화를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고야 생전에 제작된 게 아니라, 작가 사후의 것으로 세번째판, 네번째판이다. 시중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값도 별로 비싸지 않다. 고야 작품을 훼손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에겐 대단히 흥미롭고, 다른 작품 제작의 전기가 되었던 작업이다. 고야의 에칭작업 전작을 구해 이를 다루려 했으나 우리들의 첫 작업 이후 시중에서 고야의 사후판화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딜러들께서 올려놓으셨다. 그래서 더이상 못했다.

-아돌프 히틀러의 수채화에도 손을 댔다.

▶히틀러의 작품을 다루는 화랑을 통해 히틀러의 스케치를 구입했다. 13점 연작으로, 이를테면 배경에 무지개가 없었는데 우리가 그려넣는 식이다. 만약에 히틀러가 원했던 미술학교에 입학했다면 무려 700만명이 죽어나간 나치 만행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 아닐까? 뭐 그런 상상을 하며 재밌게 작업했다.

그러나 우리는 히틀러를 공격하려고 그같은 작업을 한 건 아니다. 그저 아름다운 무지개빛이며 색채를 덧입히며 세계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공상해본 것이다. 히틀러, 나치 하면 끔찍하고 불편한 정서가 먼저 떠오르지만 히틀러의 청년기 그림은 더없이 평온하고 부드럽다. 악행, 만행과는 거리가 멀다. 인류사에 있어 가장 병리적인 사람의 그림은 너무나 평화로와 그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싶었다. 해서 화사한 무지개며 동심원을 그려넣은 것이다. 


-당신들의 작업은 끔찍하고 선정적이다. 엽기적이며 폭력적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인간의 폭력과 광기를 다룬 고야의 작품을 재해석하면서 아름다운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릴 순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라 본다. 우리는 인간의 병리적 경험에 관심을 갖고 작업한다. 그러니 진실과 어긋나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그림만 그릴 순 없다. 그것은 거짓이다.

-초상화 시리즈도 논란이 되고 있다.

▶10년 전부터 초상화 작업을 해왔다. 낡은 골동품점이나 고서점, 벼룩시장 등에서 오래 전 제작된 초상화를 구입해 거기에 우리 식대로 그림을 더하고 있다. 가능하면 많은 초상화를 모아 작업하고 싶다. 과거 시대 화가들의 작업을 훼손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우리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다락방이나 벼룩시장에 버려진 초상화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자부한다. 살아 생전에 권세와 부를 누리던 부르즈아 인물을 그린 초상화의 코를 잔뜩 늘어뜨리거나 하는데(눈덩이를 밤탱이(?)로 만들기도 한다) ‘불멸의 삶’이란 없음을 사람들이 다시금 느끼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가문의 할아버지를 흉측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나?

▶다행히 아직 그런 분들은 없었다. 우리의 예술행위는 파괴적이고, 악의적인 것을 기반으로 한다. 부정적 측면에 고착돼 작업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과 자아 성찰, 도덕적 존재라는 세상의 규범에 대해서 말이다. 


-아프리카 민속조각에 맥도날드를 이입한 조각 작업도 시니컬하다.

▶맥도날드를 소재로 한 작업은 우리들의 스튜디오 옆에 맥도날드 매장이 있기 때문에 시작됐다. 그런데 버커킹이 우리의 맥도날드 작업을 소장하고 있더라. 우리는 맥도날드라는 브랜드를 차용하긴 했지만 맥도날드만의 문제를 다룬 건 결코 아니다.

-어린이들의 트레이닝복 가슴에 나치 문양이 있던데

▶인간의 폭력성은 어쩌면 아기 때부터 비롯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그런데 자세히 봐라. 나치 문양이 아니다. 거꾸로 된 나치 문양이다. 이 문양은 인도에선 우리 집에 누구나 오세요라는 의미다.

-루이비통과 커미션 웍을 했다.

▶킴 존스의 의뢰로 작업하게 됐다.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티스틱 프로젝트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히말라야 부탄의 패턴을 우리 식으로 패러디해 루이비통에 새로운 문양을 제안했다. 그런데 무척 근사한 남성복과 각종 아이템이 탄생한 것 같다. 만족스럽다. 


-이번에 루이비통에서 나온 당신들의 티셔츠, 또 스카프 속 호랑이 그림은 한국 전통민화 속 ‘호작도’(까치와 호랑이 민화)와 너무나 유사하다. 본 적이 있나?

▶한국의 민화는 본 적이 없으나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민화 속엔 호랑이 그림이 많더라. 마치 고양이처럼 해학적으로 그리는 등 유사점도 많아 놀랬다.

채프만형제는 올 가을/겨울 루이비통의 남성 컬렉션을 위해 커미션 작업을 시행했다. 루이비통의 아트디텍터 킴 존스로부터 콜라보레이션 제의를 받은 채프만형제는 프랑스 바로크시대 꽃무늬를 그들 방식대로 재해석했다. 꽃무늬 패턴에 뒤틀리고 예측불가능한 요소를 더해 덩쿨꽃을 디자인하고, 히말라야의 야생동물을 이입해 상상 속 동물과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 이들이 제작한 캐릭터와 동물, 꽃무늬는 루이비통 남성의류와 신발, 가방, 액세서리에 두루 차용돼 순차적으로 출시된다.

한편 채프만형제의 회화, 조각, 드로잉 등 45점이 출품돼 지난 20년의 예술세계 전반을 음미할 수 있는 한국 전시는 오는 12월 7일까지 송은아트스페이스 전관에서 계속된다. 무료관람. 사진제공 루이비통 코리아.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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