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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전원에서의 ‘전쟁과 평화’
두 달 전,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이젠 각박한 도시생활을 접고 전원으로 들어가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 한 가지 고민이 있다고 했다. 들어 보니, 그 고민의 정체는 ‘모기’였다. 이 때문에 아직 전원행(行)을 망설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여성이 바라는 모기 없는 전원생활이란 애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기 또한 자연의 일부이고, 그저 수많은 전원의 불청객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현관 데크 계단을 오르던 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발치를 내려다보니 새끼 뱀 한 마리가 황급히 계단 아래로 몸을 틀어 앞마당 풀숲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쇼킹한 뱀의 도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큰딸이 또 다시 현관 데크 밑에서 독사의 새끼를 발견했다. 뱀 새끼가 자주 출몰한다는 것은 가족 즉, 어미 뱀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 가족은 비상이 걸렸고, 뱀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즉시 집 건물과 가까운 수풀 가장자리를 따라 뱀 그물을 설치하고, 뱀을 포획하기 위한 ‘Y자’형 막대기와 집게, 그리고 처단 도구까지 준비했다. 바로 다음날 그물에 퇴로가 막힌 꽃뱀 새끼 한 마리를 포획했다. 이 뱀과의 전쟁은 아마도 늦가을까지 계속될 것 같다.

비단 뱀뿐만이 아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초겨울이 다가오면 따뜻한 집안으로 침투하려는 쥐떼와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지난 2011년 겨울에 시작된 쥐와의 전쟁은 매년 반복됐다. 천장과 지하창고뿐 아니라 심지어 거실에서도 대전투를 치렀고, 그 결과 지금까지 수십 마리를 잡았다.

이후 집 천장과 거실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지만, 지하창고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전투가 진행 중이다. 올겨울 지루한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지하창고 땅바닥에 침투 방지용 스테인리스 철망을 미리 깔아둔 상태다.

물론 자연의 일부인 뱀과 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전쟁은 이들이 집과 주변에서 가족의 활동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때만 치러진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의 전원생활이란 언뜻 자연의 축복만을 누리는 듯하지만, 사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축복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 겪지 않으면 안 될 각종 불편함과 위험도 호시탐탐 도사리고 있다. 보기에도 징그러운 뱀과 쥐, 각종 날벌레와 곤충들이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이게 생태계의 본모습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심신이 지쳐버린 도시인들에게 전원생활은 로망이다. 하지만 전원생활이란 게 정작 말처럼 쉽지 않다. 뱀과 쥐 등 전원의 불청객들과 비록 동거할 수는 없지만,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실제 전원에서의 전쟁이 터져도 낙심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도 쉼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전원생활이란 결국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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