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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영원한 파랑새 구본주 10주기전..그의 외침이 들린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곡선이 아닌 직선의 삶. 그리고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며 치열하게 빚은 ‘진심의 조각’.

지난 2003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뜬 조각가 구본주. 그를 추모하는 ‘세상을 사랑한 사람, 구본주’전이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에서 개막됐다.

이번 전시는 성곡미술관의 ‘작고작가재조명전’의 일환으로, 아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청년조각가 구본주의 작업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구본주는 1980년대말 높은 격랑에 휘말렸던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척박하기 이를데 없는 삶을 영위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직설적으로  빚어냈다. 이른바 ‘현실주의(realism)조각’의 대표주자였던 그는 이 땅의 역사와 정치, 사회, 가족 등 갖가지 이슈들을 뚜렷한 시대의식을 바탕으로 호소력있게 표현해낸 것이다.

구본주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1992년. 나무와 철. 높이 60cm. [사진제공=성곡미술관]

성곡미술관 앞마당에 들어서면 한켤레의 초대형 구두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낡아빠진 구두 위에, 이를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쇳덩어리를 올려놓은 이 조각은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견디어내면서도 묵묵히 사회를 받치고 있는 민초들인의 모습을 은유한다. 구구한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가슴이 뻐근해지는 조각이다. 

초창기 작업인 ’갑오농민전쟁’은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농민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또 나무를 깎아 만든 실물 크기의 ’위기의식‘이란 작품에선 수사당국에 쫓기는 사상범의 절박한 모습이 읽혀진다. 보기에 따라선 절벽으로 내몰린 기층민중의 암울한 현실을 그린 조각일 수도 있다. 행색은 몹씨 초라하나 눈빛만은 더없이 형형했던 자소상 또한 압도적이다.

성곡미술관 전관과 옥외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10주기전은 구본주가 고교시절부터 작고 직전까지 제작했던 작품 중 90여점이 엄선돼 선보여지고 있다. ‘구본주식 구상표현조각’으로 한국 현대조각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업여정은 ‘세상’, ‘사람’, ‘사랑’이라는 3개 키워드로 나눠 구성됐다. 즉 ‘세상-역사/시대정신(1986-94)’, ‘사람-사회/현실비판(92-97)’, ‘사랑-삶/현실(97-2003)’이 그것으로, 당대 현실적 이슈를 치열하게 담고자 했던 고인의 작업정신을 읽을 수 있다. 

구본주 ‘칼춤’. 1994년. 브론즈. 높이 25cm. [사진제공=성곡미술관]

출품작은 경기도 포천 작업실의 유작은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모란미술관, 성곡미술관, 개인 컬렉터 등이 소장한 주요작품으로, 그동안 접할 기회가 없었던 미공개작과 에스키스까지 한자리에 모여 구본주의 작품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구본주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척박한 삶과 일상의 주름을 어루만진 작가였다. 따라서 전시장에는 구본주의 따스한 호흡이 흘러넘친다.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함께, 지극한 인간애로 빚어낸 그의 작품에선 땀내음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현실을 향한 직설적이면서도 건강한 비판의식, 특유의 여유와 정감이 살아꿈틀대는 작품들은 오늘 다시 봐도 감동적이어서 옷깃을 여미게 한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온 구본주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다가 2003년 9월, 뒤에서 달려오던 봉고차에 치여 작고했다. MBC구상조각대전 대상, 모란미술작가상을 휩쓸며 촉망받던 작가는 많은 꿈을 남긴채 숨을 거뒀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이번 추모전은 작가들에겐 긴장과 깨달음을, 삶의 좌표를 잃어가는 대중에게는 척박한 현실에도 무릎 꿇지않고 스스로 중심을 세웠던 작가의 의지를 전해줄 것“이라며 ”진한 사람냄새, 식지 않은 뜨거운 열정을 지녔던 구본주는 우리들의 영원한 파랑새”라고 밝혔다. 전시는 10월13일까지. 성인 5000원. 02)737-7650

yrlee@heraldcorp.com

구본주 ‘배대리의 여백’. 1993년. 나무와 철. 높이 200cm. [사진제공=성곡미술관]
구본주 ‘갑오농민전쟁’. 1994년. 브론즈. 높이 290cm. [사진제공=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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