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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실 가구 · 나주반닫이…美 와이즈만 미술관엔…한국 고가구가 살아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190여점 첫 조사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가구를 판매하거나 처분해야만 했다. 기약 없는 피란길에 크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도 없었을 뿐더러, 당장 ‘먹을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또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가난 때문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가구들을 헐값에 팔아 치웠다. 이때 ‘횡재’는 외국인 수집가들의 몫이다.

1967년부터 11년간 풀브라이트재단 교육위원장으로 서울에 거주했던 에드워드 레이놀즈 라이트(1931~1988) 역시 한국 고가구 ‘횡재’를 맞은 외국인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는 오랜 피란 생활과 가난으로 인해 한국인들이 싼값에 내놓은 양질의 가구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고가구의 전통성과 단순함에 매료된 라이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일본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가구 수집을 위해 자주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의 가구: 우아함과 전통 (Korean Furniture: Elegance and Tradition. 1984)’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1988년 라이트 사망 후, 와이즈만 미술관에 기증된 그의 컬렉션이 최근 그 실체를 드러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ㆍ재단)이 지난 6월 미국 미네소타주 와이즈만 미술관의 한국 고가구 컬렉션을 조사한 것. 이 미술관의 한국 가구 190점 전부를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왕실 여성이 사용했던 이층 옷장.

이번 조사에 따르면 와이즈만 미술관의 한국 가구 컬렉션은 예술적 가치가 높고 지역색이 뚜렷한 양질의 가구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재단 측은 “해외 한국 가구 컬렉션 가운데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최고ㆍ최대”라고 평했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18세기 경공장(京工匠ㆍ왕실과 관부의 물품을 전담해서 만들던 고급 장인)이 만든 왕실 가구를 비롯해 전라도 지역 부유층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주반닫이(‘반쪽을 여닫는다’는 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상하를 개폐하는 궤의 한 종류), 평안도 지역에서 많이 사용한 박천반닫이(박천나무로 만든 반닫이), 책을 수납하는 책반닫이, 그리고 근래에는 수집하기 힘든 북한산 가구도 8점이나 확인했다.

화려한 주칠과 흑칠로 장엄한 기운까지 뿜어내는 이층 옷장은 왕실의 여성이 쓴 것인데, 왕실 가구답게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쓴 모습이 역력하다. 모서리는 곡선으로 다듬어 전보(錢寶)문양을 투각한 귀퉁이장식으로 감쌌으며, 칸을 이루는 테두리에는 2개의 골을 파서 깊이감이 살아나게 했다. 17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를 여러 겹 붙여 만든 두툼한 상자, ‘흑칠지함’은 한국종이의 견고함을 잘 보여준다. 표면에 검은 칠을 하고 뒤쪽에 사각형의 경첩을 대었는데, 가벼우면서도 튼튼하다.

먹감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마치 먹물이 나무 위를 흐르는 것 같은 나주반닫이와 무쇠장식을 앞판 전체에 붙여 박천나무의 거친 결을 감춘 박천반닫이 등 조선후기 전국 각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가구인 반닫이는 지역색이 뚜렷한 게 특징이다. 와이즈만 미술관의 컬렉션에는 지역별 반닫이가 골고루 포함돼 있어 수집가의 열정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재단과 와이즈만 미술관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라이트의 저서 ‘한국의 가구: 우아함과 전통’의 개정판을 2014년에 미국과 한국에서 발간할 예정이다.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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