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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링 권하는 사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SBS ‘토론 공감’은 지난 8일 밤 ‘힐링 권하는 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힐링은 이제 끝물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힐링’만큼 장기간에 걸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단어도 드물다. 여전히 언론은 힐링에 대한 정보와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출판계에서는 새로운 ‘힐링 멘토’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여행업계에도 힐링여행이 큰 화두고 음악도 힐링음악이 유행하기도 했다. SBS ‘힐링캠프’는 만만치 않은 토크쇼 생태계에서 ‘힐링’이라는 콘셉트로 살아남았다. ‘힐링녀’ 한혜진은 그 인기를 바탕으로 10개의 CF를 찍고 ‘2대 힐링녀’ 자리를 성유리에게 넘겨줬다.

대한민국은 왜 ‘힐링’에 열광하는 것일까? 마케팅 키워드가 된 ‘힐링’의 빛과 그림자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힐링이란 무엇일까? 토론은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면서 진정한 힐링의 의미를 찾아봤지만 주제에 대해 말이라도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게다가 상대방의 발언을 비꼬면서 자신의 생각만 옳은 것인 양 주장하는, 토론의 기본자세부터 배워야 할 토론자도 있었다.



▶사회적인 문제를 가리고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힐링=이 자리에서 논의된 이야기 중 관심을 끈 것도 있었다. 철학자 탁석산은 “힐링에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와 사회적 차원의 문제가 있는데, 우리 사회의 힐링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가리고,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TV가 잘 안 보이면 방송국에서 송출 시스템을 고쳐야지, 브라운관 화면만 열심히 닦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힐링 대표 서적인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한 자성과 비판도 나왔다. 이 책이 대한민국 청춘들의 마음을 위무해주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당의정’ 내지는 ‘마약’에 불과하다는 인식이었다.

탁석산은 “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현실 인식이 결여돼 있다. 젊은이에게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중소기업에라도 들어가 일단 시작하고 기회를 노리라고 말한다. 대기업에는 신입지원자들로 넘치는데 뭐가 아쉬워 중소기업 출신을 뽑겠는가”라며 그 허구성을 지적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도 “이 책이 10년 후에도 젊은이들에게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힐링을 과외수업 받듯이 해결하려는 현상, 멘토에게 강연 들으러 몰려드는 현실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힐링 요소에는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 양자가 존재한다. 개인적인 문제는 명상과 상담, 산책, 여행, 캠핑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힐링’받을 수 있지만 양극화, 청년 실업, 조기 퇴직,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멘토나 카운슬러, 정신과 의사 한 사람이 힐링시켜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진정한 힐링은?=그러니까 진정한 힐링은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 이 두 가지를 함께 치료해 나가는 것이다. 이의 완벽한 실현은 불가능하다. 청년 실업을 단기간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하지만 이를 보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는 종류의 대처도 힐링의 방향을 잘못 잡게 한다. 이 땅의 청춘들에게 스펙을 쌓아 무한경쟁 시대를 돌파하라는 것도 결국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젊은이들을 약올리는 해법이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 자신의 문제와 처지, 정체성을 파악해야 방향성이 생기고 불안해지지 않는다. 적어도 불안이 줄어든다. 그래야 힐링 과외를 받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멘토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물론 불안과 위험 요소는 지성과 피가 끓는 야생을 함께 갖춘 청춘들이 어느 정도 즐겨야 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찾아나서며,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힐링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국 교육이 입시와 취업 위주로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 마 선생(고현정 분)이 실시한 교육 방식이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마 선생의 교육 방식은 매정하고 냉정하지만 아이들을 강자와 약자, 경쟁과 낙오 등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고, 그 상황에서 생각하고 깨우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어서 인생지침서의 성격이 강했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진정한 교육과 행복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배워나가게 만드는 ‘마 선생’의 가르침은 대학 교육까지 이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마 선생의 교육 방식은 가장 창의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힐링’의 거품을 없앨 수 있고, 병 주고 약 주는 ‘힐링’, 상업적으로만 발달하는 ‘힐링’, 그래서 ‘힐링’하려면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드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물론 동시에 ‘힐링‘의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인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를 정부나 기업 등 누가 주체가 돼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거쳐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노력이 병행돼야 진정한 힐링을 기대할 수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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