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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집에 돌아가자, 무사히 살아서”
야구의 고전으로 불리는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는 무서움이란 화두에서 시작한다. 그는 야구란 무서움을 다루는 경기이며, 이를 간과한다면 야구에 대해 결코 어떤 이야기도 전개해 나갈 수 없으리라고 말한다.

소설가 김경욱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펴낸 여섯 번째 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는 제목과 달리 본격 야구소설이 아니다.

30년 전 억울하게 동생을 잃은 사내가 있다. 계엄군 염소는 형제에게 빨갱이가 아니란 걸 증명해보라며 주사위를 내민다. 동생은 주사위를 삼키고 가혹한 구타로 죽고 만다. 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가족은 파탄나고 화인을 품은 사내는 주사위에 짓눌리며 복수를 꿈꾼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아홉살짜리 아들 진구와 복수를 위해 길을 나서지만 얼뜨고 연신 헛걸음이다. 비상한 기억력과 노란색 집착증을 가진 아이와 과거의 기억 사이에서 복수의 길은 종종 샛길로 새고 추적 끝에 염소를 찾아내지만 코마 상태다. 그는 평생 쫓기며 살아온 염소의 주검까지 거두고 만다. 화장터를 다녀오면서 사내는 문득 아들과 함께 야구장에 가자고 했던 약속이 생각나 잠실경기장을 찾는다. 자신의 불운이 경기에 영향을 미칠까봐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9회말 경기를 똑똑히 지켜보며 깨닫는다. 결국 야구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경기란 걸.

텅빈 야구장에 거미집과 은박돗자리를 펴고 아들과 캠핑하며 사내는 생각한다. “그래, 집에 가자. 무사히, 살아서 집에 돌아가자.”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당신에게 야구란 무엇인가’라고.

속도감 있는 문체와 어느 순간에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작가 스타일이 이번 소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강한 척하지만 허하고, 똑똑한 척하지만 어설픈 이면을 그는 정확하게 포착한다. 비극을 다루는 그만의 방식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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