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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으로 읽는 옛날 CSI
무지의 광풍에 희생된 소녀 페인트공
[북데일리] 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제목부터 해석해야 한다. 다행히 부제 ‘재즈 시대 뉴욕 과학수사의 탄생기’가 이를 도와준다. 이 책에 대한 한 추천장 하나를 보자.

“이 책은 현실 속에서 소설 못지않게 놀라운 우여곡절이 일어나던 재즈 시대의 화학 범죄 연대기를 펼쳐놓고 눈을 떼지 못할 만큼 흥미로운 살인사건 사례들을 하나하나 열어 보인다. 능숙한 솜씨로 쓰인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말미에 이를 때쯤이면 우리는 모두 법의학 형사가 되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과학의 힘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화학 범죄’다. TV에서 방영되는 ‘미드’ 과학 수사 시리즈물인 ‘CSI’를 떠올리면 카메라가 몸속이나 자동차에 달려 들어가며 피부 밑의 세포나 화학 물질을 보여주는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그런 이야기다.

이 책은 1900년 초반 뉴욕을 휩쓴 범죄를 통해 무법 도시 한가운데에서 ‘법의학’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책으로 읽는 옛날 CSI 수사극이라 할 수 있다. 물론 100년도 채 안된 시기라 그렇게 부르는 일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책이 다룬 사례 하나를 보자. 1928~1929년의 라듐광풍을 다룬 사건이다. 소제목은 ‘마리 퀴리의 영광 속에서 사라진 여공들’이다. 1903년 퀴리 부부는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데 힘입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라듐은 방사성원소이다. 위험하다는 딱지가 붙어있다.

그러나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마리 퀴리는 ‘나의 아름다운 라듐’이라고 부를 만큼 귀한 존재였다. 실제로 라듐은 종양에 쓰면 암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드러나 사람들을 열광케 했다. 이 라듐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혹이 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라듐은 시계 숫자판에 빛을 낼 묘안으로 이용됐다. 군인들이 밤에 시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라듐염에 아연 화합물을 섞으면 라듐이 방출하는 입자가 아연 원자에 진동을 일으켰다. 이 진동으로 희미하게 떨리는 빛이 나타났다. 이를 제조하는 페인트 공장은 성업을 이뤘다.

‘페인트공은 대부분10대 소녀들을 비롯한 젊은 여성이었다. 함께 일을 하면서 친해진 그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라듐 페인트를 가지고 장난을 치곤 했다. 머리칼에 페인트를 뿌려서 밤에 반짝거리도록 하는가 하면 손톱을 물들이기도 했다. 한 소녀는 치아에 페인트를 바르고는 저녁 퇴근길에 체셔고양이처럼 히죽거리며 돌아갔다. 이런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사들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데 쓰는 물질이 왜 위험하겠는가?‘ -251쪽

그러나 라듐의 마력이 나타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직공들이 이유없이 병들기 시작했다. 이가 빠지고, 입안이 헐고, 턱이 썩어 문드러졌으며, 계속 되는 빈혈로 쇠약해졌다. 1924년 숫자판 페인트 공 가운데 9명이 의문의 죽음 속으로 사라졌다.

1차 대전 후 과학 기술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미국에 황금과 쾌락을 안겼다. 그러나 역사는 이 시기를 가장 음울하고 공허하게 기록하고 있다. 무지의 덫이라고 해야 할까. 책은 바로 이 사실들을 추적한다. 비소, 수은부터 일산화탄소, 클로로포름까지 흥미로운 화학여행이자 스릴 깃든 범죄수사물이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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