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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의 한꺼풀 아래 전혀 다른 세계가…
5년 만에 네 번째 소설집‘ 프랑스식 세탁소’ 펴낸 정미경 작가
우리가 믿었던 현실의 진실과 거짓
일상에 도사린 인간의 허위의식 등
7편의 단편 통해 다양한 삶의 풍경 담아
단단한 문장·성찰로 욕망의 그늘 해부



현실과 꿈, 현실과 도피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미경의 ’프랑스식 세탁소’(창비)는 그 간극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가는 표제작 ‘프랑스식 세탁소’를 비롯, 7편의 단편을 통해 일상의 풍경 뒤에 가려진 인간의 허위의식을 들춰내 보여준다. 일상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겹겹이 껴입은 자기기만의 옷이 벗겨지는 순간을 통해 ‘내가 바랐던 것’ ‘우리가 우리였던 때’로부터 현실은 얼마나 빗나가 있는가를 작가는 섬세하게 그려 보여준다.

‘남쪽 절’은 1인출판사를 경영하는 김의 이야기다. 김은 대필 의혹이 제기되기 전 베스트셀러 저자로 이름을 날린 백의 전화를 받고선 한달음에 약속 장소로 달려간다. 교통체증에 꽉 막힌 길을 용케 빠져 나오지만 그는 정작 자신이 지나쳐온 곳이 어딘지 모르다가 뉴스를 보고서야 시위대와 경찰이 맞붙은 용산개발현장이라는 걸 알게 된다. 큰 출판사에 다니다 내고 싶은 책을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나왔지만, 버텨내기가 어려워 그는 ‘한 건 터져 달라’는 심정으로 백에 매달린다.

‘남쪽 절(南寺ㆍ미나미 테라)’은 설치작품이다. 철저한 어둠 속에서 손과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빠져 나와야 하는 긴 터널 같은 공간이다. 작가는 대비된 공간을 통해 안락한 일상의 한 꺼풀 아래에 전혀 다른 세계가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물대포와 돌과 불이 난무하는 현장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나와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사과에 얹은 까망베르를 먹는 일, 설치작품의 절벽 같은 어둠을 기다시피 통과해 나온 뒤에 만나는 낯선 밝음처럼 둘은 붙어 있으나 멀다.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파견근무’와 ’타인의 삶’에서도 이어진다. 지방법원 판사인 강은 최고 엘리트로 지방 파견근무의 독특한 문화에 저절로 빠져든다. 지역유지들과 호의호식하고 엉겹결에 도박의 세계에 발을 디딘 뒤에는 매일 도박장으로 달려가는 상상만 하게 된다. ’타인의 삶’의 나는 의사인 애인이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결심하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표제작 ‘프랑스식 세탁소’는 복지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자살한 프랑스 요리사 르와조의 이야기와 중첩시켜나가며 욕망의 깊은 그늘을 보여준다. 이사장은 싹싹하고 애교만점에다 자신에 대한 존경심까지 지닌 여직원 ‘미란’에게 접근해 이용한 뒤, 재단비리 수사를 받게 되자 미란을 자살에 이르게 충동인다. 

5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가 정미경의 네 번째 소설집‘ 프랑스식 세탁소’는 안온해 보이는 일상의 이면에 도사린 인간의 허
위의식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개인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삶 속에서 저마다 겪어내야 하는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정미경의 주인공들은 진실과 거짓, 성찰과 자기기만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다. 그의 소설이 주는 문학적 감동의 지점도 바로 여기다. 그런 주인공과 상황을 통해 독자들은 저마다 자기인식에 닿는다. 정미경은 ‘작가의 말’에서 러시아가 사랑하는 국민가수의 노랫말을 소개해 놓았다. ‘달리는 말의 등에 채찍질하며 그 귀에 속삭였네. 말아, 제발 천천히 달려다오!’

말 등을 후려치면서 한편으론 천천히 가 달라고 속삭이는 게 인간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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