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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남자만 봐도 극도 공포감…대인기피증에 숨어 지내…그 일 떠올리기조차 싫어
상상을 초월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
성폭력 피해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심각
우울증·분노·적개심에 정상생활 어려워
기혼여성도 정신적 고통 마찬가지

주변 지지·배려따라 예후 크게 달라
조기에 적절한 심리상담·치료 받아야





직장인 김모 (27ㆍ여) 씨는 요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직장 동료에게 회식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한 뒤 생긴 대인기피증 때문이다. 김 씨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그 사건’ 이후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고 남의 말을 잘 믿지도 못한다. 남자, 특히 그 동료와 외모ㆍ옷차림ㆍ말투 등에 비슷한 특징이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 정도로 극도의 공포감을 겪게 돼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성폭력 당한 후 PTSD로 뇌의 구조와 기능까지 변해…우울증, 심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정상생활 어려워=성폭력 피해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극한의 위협이나 공포를 경험한 뒤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ㆍ신체적 증상인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윤호경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폭력의 경우 ‘상상적 재경험(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 그 상황이 자꾸 꿈이나 생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며 “수치심과 죄책감에 의해 회피하게 될 수 있고, 두려움은 계속 엄습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의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심한 분노와 적개심을 갖고 살기 쉬우며, 심할 경우 기억상실이나 현실감 상실 등의 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PTSD가 있으면 우울증이나 적응장애, 대인기피증 같은 질환도 흔히 동반된다.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이나 약물에 과도하게 의지해 중독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PTSD로 인해 뇌 구조와 기능이 변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트남전ㆍ걸프전에 참전해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는 공포를 경험해 PTSD에 걸려 치료받은 여군보다 성폭행의 충격으로 입원한 여군이 4배나 많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피해 직후는 물론 서서히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주변에서 본인의 잘못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따뜻한 지지와 배려를 해주는 것이 트라우마를 이기는 출발점이다.   [사진제공=고대구로병원]

사춘기 이전에 성폭력을 당한 경우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놀이처럼 당했다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갈등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성폭력의 피해가 될 수 있다. 남성 성폭력 피해자도 여성과 동일한 후유증(외상ㆍ강간쇼크증후군)이 있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그의 남성성이 의심받게 되어 심한 무력감과 치욕ㆍ공포감으로 성기능 장애가 올 수 있으며, 그가 다시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주변에서 어떤 배려를 받는지에 따라 예후 달라…약물ㆍ정신치료 동반해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 심어줘야=일반적으로 기혼인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이미 성경험도 있고 가족도 있기 때문에 피해 정도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통념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기혼 여성일 경우 배우자에 대한 정조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으며 가정에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 기혼 여성이든 미혼 여성이든, 또 아동이든 청소년이든 구분할 것 없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후 주변에서 어떤 지지와 배려를 받는지에 따라 예후는 상당히 다르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을 정확히 믿어주고 후유증 극복을 위한 지지를 받을 경우 극복에 상당한 도움이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 2~3차의 피해로 성폭력 피해 자체보다도 더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피해 발생 초기부터 피해자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 조기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에 적절한 치료, 즉 ‘힐링’을 받지 못하면 대인관계 능력에 심각한 손상을 보이며 이후 이성을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결혼을 기피할 수 있다. 결혼을 한 뒤에도 정상적인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

윤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의 치료 절차는 우선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일차적이며, 항우울제 종류의 약물치료와 정신상담치료를 동반해 불안한 감정을 줄여주고 반드시 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주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열 기자/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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