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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살인' 다룬 황색언론의 행태
[북데일리] 언론하면 생각나는 동물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적잖은 이들이 하이에나를 꼽을 듯하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짐승의 습성에, 죽은 시체를 두고 난도질하는 선정적인 행태, 즉 황색언론의 특징 때문이다.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이란 부제가 붙은 <타블로이드 전쟁>(양철북. 2013)은 1897년 6월 미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통해 황색언론의 모습을 파헤치는 일종의 르포다. 뉴욕의 한 부둣가에서 빈들거리던 아이들이 방수천에 싸인 채 바다에 떠있던 시체 토막 하나를 건진다. 비슷한 시기, 뉴욕 브롱크스 숲으로 버찌를 따러 간 가족들이 가시덤불 사이에서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을 발견한다. 며칠 뒤, 지나가던 배에 부딪힌 시체 꾸러미를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낸다. 한편, 롱아일랜드에서는 한 농부가 자기 오리들 깃털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 단순히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들이 한 사람의 것이고, 시체 조각들을 싸맨 방수천이 같고,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은 1897년을 뜨겁게 달군,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 불릴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이 시체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이며,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저자 폴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사후 수기, 인터뷰, 광고, 법원 기록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이 충격적인 토막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하나도 덧붙임 없이 흥미진진한 법정 추리 소설(Fiction)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책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뉴욕은 선정적인 보도 경쟁을 벌이던 황색 신문들의 전쟁터와 같은 곳이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인쇄술이 발달하고, 칼라 인쇄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다. 라디오조차 발명되기 전이었던 이때에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신문이었다. 당시 신문은 모든 여론을 주도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조지프 퓰리처의 <뉴욕 저널>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월드>는 황색 언론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기사를 써대며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던 라이벌이었다. 조지프 퓰리처는 퓰리처상의 그 이름이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명예롭게 생각하는 ‘퓰리처 상’의 그 퓰리처가, 실은 신경증에 시달리며 기자들을 닦달하고,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지프 퓰리처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게 이 사건은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노골적인 선정성을 전면에 앞세운 살인적 부수 확장 전쟁이 시작될 무렵이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있을 수 없었다. 퓰리처와 허스트는 특종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살인 전담팀을 꾸려 경찰보다 먼저 현장에 기자들을 보냈다. 기자들은 사건 현장에서 얻은 증거를 몰래 빼돌리고, 조작했다. 범행에 쓰였다고 생각되는 마차를 빌려 거리를 돌면서 목격자를 찾았다. 심지어 범인을 찾는 사람들에게 줄 포상금을 걸기도 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1987년 하루 평균 20만 부가 안 팔리던 신문은 사건 발생 1년 후, 50만 부, 100만 부, 150만 부까지 판매 부수가 치솟았다. 신문들은 매일같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댔다. 이목을 끌기 위해서 시체 그림을 큼지막하게 그려 칼라로 인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발견되지 못한 머리를 찾는답시고 경찰보다 더 요란하게 수색 작업을 벌여댔다. 유능한 기자들을 빼내어 가느라 돈으로 매수하는 일도 일상이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간의 욕망”이다. 작가 폴 콜린스가 끌어가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줄기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과도한 취재 경쟁에 빠진 《월드》와 《저널》의 보도 경쟁이고, 또 하나는 한 여자와 그녀의 전남편, 전애인, 현재 애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정 살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추악한 인간의 욕망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책은 광기의 시대,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라해도 무방하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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