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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공단(工團)에서 공단(空團)까지
유약함을 아무리 치장해 떠받들고 더 요란하게 선전해도 급조된 권력의 조악함까지 가리기는 어렵다. 자존심 하나로 역사적 산물, 개성공단을 통째로 지우는 저 어설픈 카리스마.



‘잔인한 4월’이 5월로 이어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그렇다. 개성공단만 놓고 보면 사정은 더 딱하다. 최종 잔류자 7명의 귀환을 끝으로 내왕은 끊어지고 그곳은 적막에 갇히고 만다.

세계인이 지켜봤다. 운전석 앞부분만 드러낸 채 차량 지붕과 문짝 사방으로 최대한 제품과 장비를 매달아 묶은 해괴한 귀환 행렬을. 또 그들을 맞으며 연신 눈물을 훔쳐대던 업주들의 애타하는 모습을.

남북 화해ㆍ협력의 상징이자 한반도 평화의 최후 보루라는 개성공단의 서글픈 현실이다. 2003년 5월 남북합의로 착공되고 이듬해 12월 첫 제품을 출하한 이래 10년 세월,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갖은 도발을 하고도 되레 통금에다 빗장까지 치겠다는 으름장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

상상속의 개성공단이 현실화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늘 ‘통 크다’는 말을 즐겨 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우리 측 제안을 호쾌하게 받은 것부터가 그랬다. 문제는 그 뒤의 일이다. 진도가 지지부진하자 2년 뒤 평양을 다시 방문한 당시 임동원 특사 앞에 김 국방위원장은 리명수 북한군 작전국장을 불러 세워 “군부가 영 말을 듣지 않는다”며 농반진반(弄半眞半)을 하고 즉석에서 “통 크게 한 번 해 보라”는 엄명을 하달한다.

북한 군부 입장에 잠시 서보자. 대놓고 대들지는 못하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 후 북한 군은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주둔하던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을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 후방으로 거짓말처럼 이전 배치했다. 과거 현대아산의 금강산 프로젝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람선 첫 출항이던 1998년 11월 18일, 당시 현지취재를 했던 기자는 장전항에 있던 잠수함기지를 근처 민둥산 너머 해안으로 서둘러 옮긴 정황을 똑똑히 보았다. 절대 권력 아니면 가능할까?

이제 그런 추억도 더 이상 속절없다. 통 큰 DNA는 3대도 못가 땡인가. 요즘 북한 동향에서 눈여겨 볼 것은 ‘존엄’이란 말이 익숙해질 정도로 자주 들린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에 빗장을 건 이유도 바로 그 존엄을 훼손한 때문이란 게 저들의 주장이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근로자 신변보호 차원의 군사작전과 지휘부 직접 타격 등의 직설화법을 쓴 것과, 일부 우리 언론이 개성공단을 외화벌이 통로로 표현한 것이 지독하게 맘에 걸린 모양이다.

존엄하면 왜 굳이 그걸 강조할까. 존엄은 자연발로일 때 값지다. 유약함을 아무리 치장해 떠받들고 더 요란하게 선전해도 급조된 권력의 조악함까지 가리기는 어렵다. 자존심 하나로 역사적 산물, 개성공단을 통째로 지우는 저 어설픈 카리스마. 요즘 엉뚱하게도 김정일 위원장이 하다못해 10년 더 살아주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에 빠진다.

이제 갈 수 없어 볼 수 없고, 볼 수 없어 알 수도 없다. 그나마 우리 정부가 단전단수까지는 고려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완전폐쇄 빌미를 막고 개성 주민을 배려한 인도적 조치다. 공단(工團)이 그야말로 공단(空團)으로 전락한 풍운의 개성 벌. 오늘 따라 착잡함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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