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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베끼기와 창작의 행복한 동거의 방식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2012년 8월, 애플과 삼성전자 간 특허소송 1심 판결이 나오자 세계의 여론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국민기업 애플을 지지하며 삼성전자를 카피캣으로 비방하던 여론이 뒤집어진 것이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애플이 혁신을 가로막고 경쟁사를 공격하는 악덕기업으로, 삼성전자는 애플과 특허법에 대항하는 약자의 대표선수가 된 것이다.

특허소송은 둘의 법적 다툼을 넘어 특허법이 혁신을 촉진시키는가, 후퇴시키는가의 논쟁으로 확산됐다.

지적재산권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칼 라우스티아라 미 UCLA대 법대 교수와 크리스토퍼 스프리그맨 버지니아대 로스쿨 교수는 공동 저술한 ‘모방의 경제학’(원제 the knockoff economyㆍ한빛비즈 펴냄)에서 혁신과 베끼기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들은 저작권법과 특허권법이 적용되지 않거나 혹은 사용되지 않는 패션과 데이터베이스, 코미디 같은 창의적 산업과 예술 분야를 탐구, 베끼기에 대한 규제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의 행복한 공존이 산업을 더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베끼기가 창의성을 촉진하는 ‘베끼기의 역설’을 보여주는 롤모델은 패션디자인이다. 패션은 상표는 엄중하게 보호하지만 디자인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음대로 베낄 수 있다.

뉴욕 7번가에 위치한 의류업체 파비아나는 아예 대놓고 “지난 7년 동안 본사의 디자인 마법사들은 가장 매력적인 할리우드 스타의 레드카펫 의상을 해석해 왔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베낄 수 있는 환경인데도 어떻게 창의력이 유지되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패션의 경제적 특수성은 사회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 고가 상표와 고급 재료, 유행의 선도를 통해 패션의 지위는 드러난다는 것이다. 만약 오리지널 제품을 구입할 만한 소비자가 모조품을 구입한다면 최고급 의류 가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겠지만 두 층은 나뉘어 있다. 패션의 모조품은 최고급 의류를 모방하지만 비싼 재료를 따라가지 못한다. 오리지널 가격은 고공행진을 벌이며 더 간극을 벌린다. 최고급 패션은 아예 시장이 다른 것이다.

자유롭게 베끼기는 인기있는 디자인을 다른 사람이 마음껏 모방하게 함으로써 패션주기를 단축하는 촉매역할을 한다. 그래서 디자인이 더 빨리 유행을 타고, 더 빨리 진부해진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는 새로운 디자인을 창작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무단복제는 사람이 유행 패션을 찾는 데 들어가는 정보 비용을 낮추는 데도 기여한다. 패션에서 모조품과 창작의 사이좋은 공존의 방식이다.

요리 역시 비슷한 데가 있다. 조리법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른 사람의 조리법을 자유롭게 베낄 수 있다. 저작권의 시각에서 보면 요식업계는 다른 요리사의 음식을 베끼기가 쉽고 합법적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요리는 먹을 수 없어야 하지만 매일 새로운 요리가 개발되고 있다. 현대 음식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창의성을 꽃피우며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

저자는 데이터베이스 산업도 창작과 표절의 공존사례로 제시한다. 미국은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사실 정보를 누군가 베낄 경우 저지할 법이 없지만 데이터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금융정보 제공업체인 다우존스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사실 정보에 기초한 데이터베이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포천 500대 기업인 던앤드브래드스트리트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전 세계 1억5000만개가 넘는 기업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있다. 이들은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한다. 미국 데이터베이스 산업의 성과는 유럽 기업이 따라가지 못한다. 음악산업이 처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더욱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베끼기와 창작의 행복한 공존의 다양한 사례가 주는 교훈은 저마다 다르다. 이들을 통해 모조품의 피해를 줄이면서 창조산업을 발전시키는 해법을 찾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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