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꽃차 마시며 즐기시라,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 한병철 교수의 또다른 문제작
[북데일리] ‘시간은 대명천지에도 밤도둑처럼 소리 없이 간다.‘ 바쁜 현대인이 공감할 금언이다. 이 글의 출처는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 2013)이다. 이 책은 2012년 최고의 인문서로 꼽힌 <피로사회>의 저자 베를린 예술대학 한병철 교수의 저서다.

한해의 가장 인상적인 키워드가 됐던 <피로사회>는 저자와 그의 다른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이번에 나온 <시간의 향기>는 <피로사회>보다 앞서 나온 책이다. 시간에 관한 논문 혹은 에세이로 읽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느끼고 있는 시간의 문제나 가치, 쓰임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시간이란 단어와 연결되는 소설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시간의 향기>에서도 이 책을 텍스트로 삼고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프루스트가 해당 소설을 쓴 배경에는 제목처럼 시간의 이슈가 자리잡고 있다.

한병철 교수는 프루스트 소설이 조급성의 시대, ‘예술조차 짧은 줄에 바짝 묶여있던 시대‘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소개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프루스트의 시도는 인간 삶의 탈시간화 과정이 진전되면서 결국 삶을 분해해버릴 지경에 온 상황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 그리하여 시간에게 ’향기‘를 발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책에서 보리수 꽃차에 담근 마들렌의 향과 맛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프루스트는 주인공 마르셀이 ’마들렌 차‘를 마시는 장면을 두고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완전히 독자적인 전대미문의 행복감, 그 근거가 무엇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그런 행복감이 내 온 몸에 흘러 퍼졌다.”

저자 역시 현재의 시간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로부터 대안을 찾는다. 그 시간은 이를테면 ‘소외된 시간’이다.

“오늘날 시간의 흐름은 자연적 순환과 같은 리듬도, 미래의 구원이나 종말, 또는 진보라는 의미 있는 방향성에서 오는 서사적 긴장감도 상실해버렸고, 그저 끝없는 현재들의 사라짐으로써 체험될 뿐이다. 그리하여 지속성의 경험은 매우 희귀한 것이 되었다. 이에 따라 개개인의 삶도 이렇게 분산된 시간 속에서 산만하게 흘러간다. 즉흥적인 시작과 중단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삶은 완결되지 못하고 불시에 끝나버린다.”

책은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루스트, 하이데거, 한나 아렌트, 료타르 등의 사상을 등장시키며 시간의 문제를 파고든다. 그가 이끄는 논의는 시간의 정체성과 의미를 찾아주는 하나의 키워드로 모아진다. 즉 바로 책 제목처럼 '향기'다.

“아름다움은 지속성에, 사색적 종합에 의존한다. 순간적인 광휘나 자극이 아니라 사물들의 잔광, 사물들의 여운이 아름다운 것이다. 사색적인 머무름, 금욕적인 자제 속에서 사물은 그 아름다움을, 그 향기로움의 정수를 드러낸다.“

저자가 내놓은 밥상에는 의외로 동양적인 반찬이 눈에 띈다. 그는 ‘비움’이 정신을 욕망에서 해방하고 시간에 깊이를 준다고 말한다. ‘정신이 가만히 자기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을 때 좋은 시간이 생겨난다‘는 것. 책에 나오는 인용구 하나가 이 주장을 대변한다.

봄의 백화, 가을의 달-

여름의 서늘한 바람, 겨울의 눈.

정신에 쓸데없는 일이 매달려 있지 않다면

그게 바로 사람에게 좋은 때라네. 100쪽

시간에 관한 다소 어려운 글이지만 향기와 운치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 글 속에 은은한 향이 있다.


[북데일리 제공]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