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리스에서 활동 중인 루비는 지난 5년간 그 어떤 작가보다 빠르게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미국의 어두운 면을 응시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로스앤젤레스 빈민가의 벽을 재해석한 스프레이 회화 연작이다.
루비는 “L.A 거리의 벽들은 당최 성할 날이 없다. 매일 저녁 갱단들은 자기들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빈 벽에 갱단의 문양을 그라피티로 그려넣는다. 그러면 시(市) 당국은 새벽녁에 그 문양들을 모조리 지워낸다. 결국 겹겹이 덮힌 스프레이 페인트는 얼룩을 남긴다. 난 그 얼룩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고 했다.
얼룩진 도시의 벽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겹겹이 뿌리거나 물감을 떨어뜨리며 몽환적인 화면을 만들어냈다. 부드러운 파동이 이는 듯한 그림을 자꾸 보니 모네의 ‘수련’이 떠올랐다. 작가는 “맞다. 모네의 ‘수련’을 내 식대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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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털링루비(SterlingRuby/설치작가) |
그는 또 골판지, 데님(청바지용 천)을 활용한 콜라주 회화도 내놓았다. 대표적 콜라주 연작인 ‘EXHM’는 작가가 대규모 우레탄 조각을 제작하며 작업장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깔았던 골판지로 만든 것이다. 당연히 테잎이며 발자국이 남아있는데 그 축적된 이미지를 작가는 ‘회복을 위한 매개체’ 또는 ‘새로운 집합체’로 재해석해냈다. 이들 콜라주 회화는 어둑시근한 가운데 묵직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루비는 또 데님을 표백해 패치워크하거나, 버려진 가죽을 재활용하는 등 온갖 재료와 실험적 기법으로 현대사회의 감춰진 면모를 수면 위로 끌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세라믹 및 금속으로 만든 조각 ‘베이신(Basin)’ 시리즈도 나왔다. 거대한 대야를 연상시키는 조각은 어지러운 무덤같다. 둥근 대야에 비정형의 파편들이 들어선 까닭에 인간 삶의 아프고 쓰린 궤적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 둥근 형상의 금속 조각은 옛 전쟁터의 벙커처럼 을씨년스럽다. 허나 묘한 매력이 감상자의 발길을 붙든다.
전후(戰後) 독일 현대미술가 요셉 보이스가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개념을 구현했다면 오늘날 미국에선 스털링 루비가 장중하면서도 파워풀한 작업으로 날카로운 개념을 전파 중이다. 그가 내놓은 작품 중에는 요셉 보이스가 시도했던 작업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들이 눈에 띈다. 스털링 루비의 대작 회화는 지난 2008년 약4만달러였는데 5년 만에 50만달러를 호가한다. 내로라하는 유명 미술관은 물론 주요 아트컬렉터들이 너도나도 그의 작품을 수집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조각 또한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다.
루비는 “나의 작품은 재료나 기법 면에서 상이하지만 사회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또 자전적으로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그는 독립적인 개인간 충돌과 사회적으로 합의된 통제기제 간의 함수관계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또 세계의 리더를 자임하는 미국의 국가주의에 대한 심리적 반발과 인간의 부조리성, 사회적 소외에 주목하며 제도권 내의 건축적 파급과 인간의 습관적 행동기제도 다루고 있다. 루비의 저항적인 작업들은 미국의 세련된 미니멀리즘 아트와 대척점을 이루며 미국현대미술의 결을 보다 풍성하게 하고 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사진제공=ⓒSterling Ruby,국제갤러리.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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