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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제주순례길 20일 개장, ’하논성당길’ 걸어보니
[제주=헤럴드경제 이윤미 기자]제주 한라산 남쪽 하논 지역은 제주에서 드물게 논농사가 되는 곳이다. 큰 논을 뜻하는 ‘하논’은 제주의 대표적인 마르형 분화구로 둥근 꼴의 작은 언덕이 멀리 둘러쳐 있다. 바닥에 물이 흘러나와 벼농사가 가능했던 하논의 논바닥엔 지난해 잘라낸 볏대 꽁지가 마른 수수깡처럼 남아있다.

113년 전 이곳에 한국인 신부가 처음 신앙의 터를 잡았다. 1899년 5월 프랑스 선교사 페레 주임신부의 보좌 신부로 제주에 들어온 김원영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1900년 6월 12일 서귀포시 하논 지역에 초가집 성당을 세운다.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성당인 하논성당이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오는 4월 20일 하논 성당 터를 중심으로 10.6㎞에 이르는 순례길 ‘하논 성당길’을 개장한다. 지난해 개장한 김대건 길에 이어 천주교 제주 순례길 2번째 코스로, 앞으로 4개 코스가 더 개발된다.

’하논 성당길’(’환희의 길’)은 서귀포 성당에서 시작, 하논 성당터~하논 생태길~솜반내~흙담소나무길~홍로현 현청길~지장샘~홍로 성당 터~면형의 집~서귀 복자 성당~복자 성당 터를 지나 서귀포 성당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서귀포 성당은 1901년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으로 하논 본당이 폐허가 되자 1902년 일본인 타케 신부가 홍로본당으로 이전했다가 1937년 라이언 신부에 의해 현 서귀포 성당으로 이전, 오늘에 이른다. 성당에서 출발해 천지연폭포 윗길 ‘작가의 산책길’로 접어들어 1㎞ 정도 걷다보면 천지연폭포의 상투에 다다른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우렁찬 물줄기와 깊이를 알 수 없이 컴컴한 천지연못의 웅대함이 졸졸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머리에 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곳이다.

이 길을 벗어나 큰 도로로 나오면 서귀포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다리와 만나게 된다. 이 다리를 건너 하논로 88번지 표지가 있는 쪽으로 걸어들어가면 편백나무가 높고 시원하게 뻗은 길이 이어진다. 편백나무 껍질향과 흙내가 깔린 폭신폭신한 길을 걷다보면 자꾸 코를 큼큼 거리게 된다. 여기서 하논 성당 터까지 길은 1.4㎞. 복원 계획이 추진 중인 평평하고 너른 터엔 햇빛이 가득하고 풀이 무성하다. 하논 성당은 당시 초가집 성당으로 추정되는 일자형 초가집 두 채를 기억자로 복원할 예정이다.

성당 터를 나와 막다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내려가다 보면 흐드러진 동백이 담벼락 밑에 뚝뚝 떨어져 꽃무덤을 이루고 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너른 논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논 분화구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탄(泥炭)습지로 바닥에는 하루 1000~5000ℓ의 용천수가 나와 500여년 전부터 벼농사가 행해졌다. 햇빛이 가득 펼쳐진 생태길은 유채꽃과 벚꽃이 짝을 이뤄 화사하다.


하논 돌담길은 서귀포 70경 중 하나로 꼽히는 솜반내로 이어진다. 오래된 팽나무와 동백나무가 돌담길과 맞대 늘어선 홍로마을 길을 지나면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인 ‘면형의 집’(전 홍로성당)에 닿는다. 이곳에는 식물학자이기도 한 타케 신부가 1911년 왕벚나무를 일본에 보내자 답례로 보내온 온주밀감 나무 14그루 중 한 그루가 남아있다. 제주 최초의 감귤나무다.

5월 15일 신축 완공될 면형의 집 성당은 화제가 될 만한 내부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제주도 지도를 거대한 원석에 붙여 한라산 모형대로 깎은 통돌 성당 제대다. 또 십자가는 기도를 위해 무릎을 꿇는 나무대를 이어붙여 만드는 중이다. 이곳을 나와 걷다 보면 서귀복자 성당으로 이어진다.

순례길은 기존 제주 올레길과 만나기도 한다. 관광객들로 북적한 올레길과 달리 호젓하다. 시골 동네길의 아기자기함과 개짖는 소리, 길가로 난 창, 빨래에 눈길이 머물러 자꾸 걸음이 느려진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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