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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각으로 음악을 빚다…존배의 명징한 추상조각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원로 조각가 존 배(76)의 개인전이 개막됐다. 그의 조각은 동양의 정신성을 서양의 조형어법에 대입시켜 ‘초월적 추상’을 올곧게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억의 은신처’라는 타이틀로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 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존 배는 한국 모더니즘 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 가느다란 철사를 손으로 일일이 용접해 정사각형이나 반원을 만든 뒤 이를 끝없이 이어나가 커다란 구조를 만드는 존 배의 조각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기하학적이면서도 곡선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다.
7년 만에 갖는 고국에서의 작품전에 존 배는 2008년 작부터 최근 작까지 20여점을 출품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작품들은 안정된 틀에 살짝 변화를 가해 그 묘미가 각별하다.

작가는 열두 살이던 1949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부모는 구호 활동을 하기 위해 아들을 미국에 남겨두고 귀국했다. 홀로 남겨진 존 배는 고난의 과정을 거쳐 4년 장학금을 받고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 진학했다. 27세에는 프랫인스티튜트 조각과 최연소 학과장에 올라 30년간 프랫의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고령임에도 여전히 재료 선택에서부터 용접과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혼자 진행한다.


“내 작업은 재즈와 유사한 점이 많다. 매 순간 우연한 결정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기 때문에 직접 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겉은 달라도 내면엔 무언가 ‘하나’씩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과학에서는 원자가 있고, 음악도 하나의 음에서 시작한다. 나 역시 항상 ‘하나’라는 개념을 갖고 작업했다”고 했다.

피아노를 배운 어머니 덕분에 존 배와 그의 누나, 형 모두 악기를 연주했는데 이런 성장 배경은 그의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흐를 좋아한다. 바흐는 단순한 선율에 약간의 변화만 줌으로써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나 역시 작업이 잘 안 풀릴 땐 바흐로 돌아가면 길이 나오더라”고 밝혔다.

수십년째 하루 10시간씩 작업하다 보니 존배의 오른손은 신경통 때문에 거의 마비상태다. 그럼에도 엄청난 공력이 드는 용접작업을 고수 중이다. “용접작업은 드로잉과 매한가지다. 철사를 녹이면 액체처럼 되는데 그림 그리듯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다. 게다가 철사는 비싸지않고 튼튼하다. 녹이 슬면 사라지는데 그 또한 생명체같은 느낌이라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4월25일까지. 02-2287-350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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