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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해남 땅끝마을--새 희망의 시작 ‘한국의 희망봉’
[헤럴드경제=해남]땅끝은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 ‘희망의 시작점’이었다. 희망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아주 ‘극단적인 생각’으로 찾은 사람조차 살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 해남 땅끝마을을 ‘한국의 희망봉’이라 부르고 싶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 해남 앞바다의 물살은 거세고 바람도 매섭다. 예부터 뱃사람들은 제(祭)를 지내며 무사안녕을 기원하고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험난한 자연은 이 고장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었고 이 모든 걸 품고 살도록 포용력을 심어줬다. 그래서 해남 사람들에게선 배타성 보다는 협력과 포용을 통한 융합의 온정이 넘쳐난다.

한반도 뭍으로 연결된 최남단 땅끝마을의 땅끝이다.

타지역 출신에게 해남은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어느 지역에서 왔든 해남에 오면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울 수 있었다. 해남군청 홍보계 정근순님은 이곳 재래시장에만 해도 40% 가량 외지인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꼭짓점에 한반도의 최남단 뭍의 끝을 형성한 것은 나에게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한 점에 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희망봉’을 연상케 했다. 지리상 위치도 닮았지만 이 꼭짓점이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이라는게 더욱 그러했다.

이미 관광명소가 된 지 30년이 가까워 오고 수많은 국민이 다녀간 곳이건만 나는 이제야 늦깎이 관광에 나섰다. 대신 단순히 경치보다 뭔가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곳이길 바라며 떠났다. 서울에서 워낙 먼 거리라 새벽 3시10분에 차 시동을 걸었다. 집에서 해남읍까지는 373km. 딱 중간지점인 탄천휴게소에서 세월을 즐기며 1시간 반을 새벽밥 먹고 쉬어 가니 8시40분에 도착했다.

땅끝마을 관광지는 겉으로 보면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제외하고는 여느 해안가 마을과 특별히 달라 보일게 없다. 그냥 ‘전망대가 있고 바다가 있는 땅끝인 동네구나’ 하는 느낌 정도라 할까. 그래서 나는 해남에 와서 만난 관광해설사 전희숙 선생님께 여쭤봤다. 

땅끝마을 전망대. 해발 200m 높이로 맑은날엔 한라산 정상도 보이는 곳이다.

“땅끝마을, 아니 이 땅의 끝에서 저는 무슨 의미를 새겨볼 수 있을까요” 전 선생님은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온 땅끝에 기(氣)가 뭉쳐있고 이 기가 제주도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곳에 오면 이 신선한 기를 받아 새로운 희망을 얻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필자가 내려오면서 생각해봤던 ‘그 뭔가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어서 안도가 됐다. 전 선생님은 정말 박학하시고 깊은 지식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땅끝마을에 오면 땅끝경치만 보고가지 말고 새로운 희망을 하나씩 품고 돌아가자. 신선한 기를 받아 갈 수 있는 곳이다.

땅끝마을 관광은 코스를 잘 잡아야 즐겁게 할 수 있다. 의외로 적잖은 사람들이 역방향으로 관람길을 택해 급경사를 만나 고생하기도 한다. 가장 효율적인 관광은 우선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라 다도해와 주변 경치를 만끽하는 것. 모노레일이 경사로를 오르면서 내려다 보이는 땅끝마을 전경이 그림 처럼 아름답다. 달마산 줄기가 땅끝까지 이어져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는 해발 156.2m의 갈두산(葛頭山)이다. 여기에 약 4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해발 200m 높이서 주변을 내려다 보게 된다.

모노레일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중 내려다 본 땅끝마을.

주변의 다도해는 물론 동쪽의 완도, 서쪽의 진도도 가깝게 다가온다.

남쪽으로는 추자도와 맑은 날에는 100km 떨어진 한라산 정상부분도 보인다고 하는데 마침 비가 내려 그 경치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이 전망대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컨셉으로 횃불모양을 하고 있는데 2002년 1월1일 새로 오픈했다. 전망대 앞에는 돌로 쌓은 봉수대가 있다. 조선 후기 군사기지 역할을 한 요지였다. 

땅끝마을의 이모저모. 맨 왼쪽이 땅끝탑이다.

땅끝마을 관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반드시 땅끝탑에 들러야 진정 땅끝에 와봤다고 할 수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안가고 알아도 안가는 경우가 있다는 말에 놀랐다. 이곳은 전망대일 뿐이고 진짜 땅의 끝은 전망대 남쪽 경사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야 있다. 내려가는 데크길도 재밌게 꾸며놨다. 맨 위 함경북도에서 시작해 진짜 해남 땅끝까지 가는 코스로 만들어 한반도 삼천리 금수강산을 내 발로 걸어내려가는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가 이천리, 합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할 정도로 이 땅끝의 의미는 실로 크다.

바닷가에 이르면 뾰족한 삼각탑과 그 앞 바다쪽으로 설치된 뱃머리가 이 땅의 끝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가 정말 땅끝일까. 의심해 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팁, 진짜 땅끝은 사실 그 뱃머리에서 왼쪽으로 10여m 떨어진 곳의 튀어나온 바위가 실제 주인공이다. 아무도 알아채주지 않는 그 이름없는 바위가 이 땅의 진정한 끄트머리이자 시발점이다.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북위 34도17분21초. 그 바위는 급경사와 바다가 연결돼 위험해서 바로 옆 같은 위도상에 이 뱃머리를 설치해 최남단의 의미를 부여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이 사실, 이제 헤럴드경제 독자분들은 이 뱃머리 끝에 서서 왼쪽 진짜 끄트머리 바위가 함께 나오게 인증샷을 찍어보자.

여기가 진정한 땅끝. 붉은 점선 속 바위가 육지로 연결된 한반도 최남단이다. 흰 점선은 뱃머리가 위치한 바위.

땅끝탑에서 길은 두갈래인데 서쪽으로 가면 송호해변과 해남오토캠핑장이 나오고 동쪽으로 가면 모노레일 탄 곳이 나온다. 나는 차가 거기에 있기에 동쪽 길로 올랐다. 왔던 데크를 따라 조금만 오르다보면 오른쪽 데크길이 또 나오는데 그 길로 가면 모노레일 방면이다. 놀며 걸어도 10분만에 도착했다. 도중에 맨발로 걷는 지압길도 있어 신발을 벗고 걷고싶었지만 보슬비에 바닥이 너무 차가워 차마 그럴 용기는 없었다.

모노레일 앞으로 나오면 오래된 고목들이 줄지어 있는데 팽나무다. 앙상한 가지가 분재 같은 운치를 풍긴다. 이 나무숲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2~3분만 가면 해맞이로 유명한 맴섬이 나온다. 바다 좌우 두 개의 섬 사이로 일출이 장관인데 1년에 딱 두번, 2월 중순 사나흘과 10월 중순 사나흘 정도만 기회를 준다.

하지만 멋진 사진 찍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우선 그 정해진 날에 날씨가 따라줘야 하고 또 추운 계절 전날부터 진을 치고 밤을 새야 찍을 기회가 있을 만큼 사진작가들이 북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풍경을 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땅끝마을은 보기 드물게 한자리서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년에 딱 두번 두 바위 사이로 황홀한 일출을 보여주는 맴섬. 대한민국 최고의 포토존이다.

이 땅끝에는 갈산당이라는 당집이 있는데 남해와 서해의 물이 부딪혀 물살이 세기 때문에 양 바다를 오가는 뱃사람들은 이 당집에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다녔다고 한다. 이곳 물살은 하도 세서 ‘울돌목 물살도 울고간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죽음의 고비’를 뜻하는 사재끝이 이 땅끝에 있어 제를 지내야 안심하고 지날 수 있었다. 실제 전 선생님도 배를 타본 결과 밖에서 보기엔 잔잔했는데 물살이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이 땅끝 험한 바다를 무사히 헤쳐 건너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에 ‘한국의 희망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케이프타운 희망봉은 포르투갈 선원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인도를 향해 항로 개척에 나선 1488년 우연히 발견했는데 폭풍에 떠밀려 닿았다 해서 ‘폭풍의 곶’이라 이름지었지만 후에 포르투갈왕 주앙2세는 인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모양이었다. 왕은 ‘희망의 곶’으로 명칭을 확정했는데 그 의미를 새겨보면 역시 ‘고난 뒤에 찾아오는 희망’이 해남 땅끝마을의 사연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이 희망봉을 영어로는 ‘Cape of Good Hope’라고 부른다.

이렇게 견줘보니 해남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주는 고장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해쪽 사람들은 서해 앞바다로, 서해쪽 사람들은 남해 앞바다로 고기잡이 나서기 위해 이 험한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지나갔을 땐 그들도 만선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테니까. 또 뭍에서는 땅끝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다시 땅을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고 나아갔으리라.

전망대 바로 아래 서쪽의 작은 만(灣)을 댈기미라 부르는데 서해와 남해 물이 만나는 곳이고 그 앞의 바다 바깥 쪽이 만호바다로 해남의 맛있는 김이 여기서 생산된다. 전망대 바로 아래 동쪽의 모래사장은 목넘개라고 한다.

댈기미와 목넘개 쪽에서 전망대 쪽을 향해 소원을 빈 후 조약돌을 바다로 던져보자. 단, 아무도 모르게. 그러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곳의 작은 돌을 소중히 간직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면 역시 사랑이 꼭 이뤄진다는 얘기도 전해오고 있다.

땅끝마을의 이모저모. 땅끝마을의 산은 갈두산이라고 하는데 상공에서 보면 한반도를 닮았다.

땅끝마을 근처에는 3개의 유명한 해변이 있다. 송호해변과 사구미해변, 송평해변이다. 송호해변의 송림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이곳에는 해남군에서 오토캠핑카로 조성한 캠핑장이 큰 인기를 끈다.

10개동이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해 물놀이와 송림 속 경치도 함께 즐길 수 있어 비수기에도 주말이면 캠핑족이 몰린다고 한다. 1실에 5인을 수용할 수 있는데 2층 침대며 주방, 샤워, 화장실까지 있을 건 다 있어 편리하다.

땅끝마을 옆 송호해변에 자리잡은 해남오토캠핑장. 바다와 송림 옆에 있어 인기 만점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오지마을이었던 땅끝마을에 1987년 땅끝탑이 세워지면서 해남관광 1번지가 됐고 전국구 관광명소가 됐다.

이 마을이 이젠 ‘치유의 마을’로 한단계 도약하고 있다. 아주 암울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극단적인 생각’을 품고 이 땅끝에 와서 마지막으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새로운 희망을 안고 ‘좋은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도 한 곳, 봄의 길목 우수(雨水)를 하루 앞둔 날 여기에 내린 이 보슬비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싹틔워 줄 자양분 비가 되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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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관광지와 특산품 그리고 해남사람들 : 땅끝마을에는 음식과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집들이 두루 있다. ‘전라도 한정식’집은 게장정식으로 유명하다. 특히 하얀총각김치는 별미다. 간장게장은 화학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천연 조미료와 정통방식으로 제조해 맛과 건강을 우선시했다.

해남군 3대 브랜드상품은 특히 눈길을 끈다. 딱 10만석만 한정 생산하는 땅끝햇살 쌀, 당도높은 건강식품 해남황토 고구마, 청정 해남 김이 그것.

주변 22km에서 해안관광도로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고 달마산 도솔암과 미황사, 우항리 공룡화석지, 두륜산 대흥사 등도 꼭 봐야 할 명소들이다.


해남군 홍보계 정근순님은 “이젠 새로운 희망과 재충전이 가능한 관광지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넋두리로, 전 선생님이 들려준 재밌다가 썰렁하게 끝난 이야기 하나. 서울에서 해남으로 시집온 새댁이 시장에 고등어를 사러 갔다. “아줌마 이거 고등어 맞죠?” 묻자 어물전 아줌마 왈 “잉, 기여”

새댁 “아줌마, 서울에서 왔다고 왜 놀리세요. 고등어를 왜 기(게)라고 하세요” 새댁은 다시 옆의 아줌마한테 묻는다. “아줌마 이거 고등어 맞죠?” 아줌마 “잉 기당께”. 안되겠다 싶어 새댁은 마지막으로 옆의 아저씨한테 다시 묻는다. “잉 기구만”

새댁은 고등어를 샀을까? 궁금해서 결과를 물었더니 “아마 사서 갔겠죠” 라고 해 모두 웃음바다가 됐다. 진한 향토냄새, 이것이 진정한 여행의 맛 아닐까.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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