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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문화의 홍수, 정신의 빈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인도에 버금가는 광활한 국토에다 풍부한 자원으로 100여년 전에만 해도 세계 최고의 부국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크고 작은 경제위기로 비틀거리다가 지금은 남미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 보면 탱고와 축구로 대표되는 열정적인 대중문화가 넘치지만, 국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작년 6월 아르헨 북부도시 살타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가 “아르헨티나 집권층은 부패하고 물가가 치솟아 국민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TV는 흥미를 끌기 위한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사건사고만 전한다”며 “여기엔 희망이 없다”고 한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단편적인 사례일수도 있지만, 이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화가 없으면 아무리 잠재력이 크더라도 사회가 퇴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한국문화의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가요와 영화, TV 드리마나 예능 등 대중문화는 사상 유례없는 부흥기를 맞고 있지만, 거기에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도서출판은 빈사상태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영화는 수개월째 월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K-팝을 앞세운 한류열풍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수만명이 몰린다. 이에 비해 지난해 신간발행 부수는 20% 이상 급감해 2000년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사회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영화와 드라마도 많지만, 깊은 성찰을 담은 책을 읽는 데서 얻는 감동과 메시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10대 청소년들의 주된 놀이터인 인터넷은 이미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가십성 뉴스로 도배되고 있지 않는가.

이런 대중문화와 출판의 불균형이 지속될 경우 대중문화도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을 상실하고, 나아가 건강한 사회발전도 기약하기 어렵다. ‘좋은 책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넘기기엔 환경변화가 너무 급박하다. 위기의식을 갖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학계와 작가, 출판계 등 출판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담은 책을 만들기 위해 공을 기울여야 한다. 학계는 상아탑의 고담준론에서 벗어나, 김은 학문적 성취를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중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학문의 대중화에 나서야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출판계는 이런 저작의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도 문화의 불균형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을 확충하고, 우량도서와 골목 서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독서는 습관인 만큼,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지금 한국문화는 중대한 분기점에 와 있다. 2만달러를 넘어서면서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분출하고 있지만, 그것이 표피적인 영상 중심의 대중문화에 쏠리고 있다. 문화 상업주의는 활짝 펼지 모르지만, 국민의 정신은 더 황폐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해준 문화부장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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