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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가족 여행기<34> 정치안정-경제성장-사회통합의 희망…칠레 산티아고
[산티아고=이해준 문화부장]남미의 두 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거쳐 안데스 산맥을 넘어 남북으로 긴 국토를 가진 칠레로 향했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함에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은 터여서, 칠레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칠레의 첫인상은 아르헨티나보다 남루하고 낡아보였지만, 갈수록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칠레는 여러 면에서 한국과 유사했다. 두 나라 모두 각각 동아시아와 남미의 작은 나라이면서, 개방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칠레는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사이다. 한국은 27년간, 칠레는 17년간 군부독재를 경험했고, 이에 대한 처절한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다. 민주화와 함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 칠레는 남미의 모범국, 한국은 아시아의 모범국이 됐다.

안데스와 태평양 연안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자연과 그 속의 문화도 멋있지만, 사회의 역동성은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통령 집무실인 모네다 궁 앞에 말을 기마병이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독재자 피노체트가 1973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때 아옌데 대통령이 최후까지 저항하다 사살된 곳이다.

▶남북 길이 세계 최장, 칠레의 난해함=칠레의 남~북은 4630km로 남미의 절반에 걸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까마 사막에서부터 아열대 우림, 중부의 농경지, 화산과 호수, 남극과 빙하에 이르기까지 생태도 다양하다. 때문에 칠레를 제대로 돌아보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일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은 수도 산티아고다.

필자는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 국토의 가운데 쯤에 해당하는 오소르노부터 시작했다. 북쪽으로 산티아고와 제2의 도시인 발파라이소를 돌아보고 다시 안데스를 넘어 아르헨티나 멘도사로 넘어간 다음 북부 살타에서 다시 안데스를 넘어 아타까마 사막까지 돌아보았다. 나중에 볼리비아~페루를 포함해 안데스 산맥을 5차례 넘었는데, 그 광대함과 장쾌함은 끝이 없었다.

처음 접한 칠레의 오소르노는 작은 타운이었다. 버스터미널 앞은 낡고 허름했다. 타운도 소박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영어가 그런대로 통했는데, 오소르노에선 거의 통하지 않았다. 주민 대부분이 메스티조로 촌스런(?) 모습이었다. 갑자기 안데스로 온 것 같았다. 사실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11시간 걸리고 경작 및 주민 거주의 남쪽 한계에 가까운 지역이니 그럴만도 했다.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칠레의 지방 소도시여서 오히려 상업주의에 탈색하지 않은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소박하지만 부랑자들이 많은 아르헨티나에서와 같은 ‘불량한’ 느낌은 없었다. 타운의 상가와 식당은 화려하지 않지만 짜임새가 있었다. 시내 곳곳엔 대형 쇼핑몰들이 막 들어서고 있어 칠레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칠레는 1980년대말 민주화 이후 꾸준한 경제성장 속에 물가와 재정도 안정돼 남미에선 처음으로 2010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다.

16세기 산티아고가 건설될 때부터 정치와 경제ㆍ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 카테드랄과 역사박물관 시청사 등이 있고, 발디비아 장군의 동상도 있다.

▶칠레 국가발전의 원동력, 사회통합의 뿌리=오소르노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11시간 달려 도착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단연 활기가 넘쳤다. 동쪽으로는 안데스의 영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태평양까지 평원이 이어진다. 산티아고 인구가 550만명으로 칠레 인구(1600만명)의 1/3정도가 몰려 있고, 국내총생산(GDP)의 45% 정도를 차지한다.

산티아고를 돌아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내 프리투어다. 브라질 미국 유럽 여행자 10여명과 함께 참여했다. 출발 지점은 모네다 궁. 칠레의 대통령 궁으로 인근에 정부 청사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이다. 정부청사 건물 뒤편은 헌법 광장으로 불리는데, 청년 가이드인 호세는 광장에 세워진 아옌데 전 대통령 동상 앞에서 굴곡진 현대사를 소개했다.

내과 의사이기도 했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대통령에 당선돼 기간산업 국유화, 최저임금 인상, 초등학생 무상급식, 빈곤층 주택지원 등 개혁에 적극 나섰다. 그는 남미에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정책은 민중의 지지를 받았지만 보수층과 미국의 반대, 미국이 사주해 벌어진 파업 등으로 혼란이 심화하며 경제도 어려워졌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내려다본 산티아고. 해가 지면서 어둠이 밀려오는 도시 뒷편의 안데스 영봉들이 노을에 빛나고 있다. 시내엔 한창 건설중인 남미 최고층 빌딩도 보인다

혼란 중에 군부 지도자 피토체트가 1973년 11월 쿠데타를 일으킨 곳이 이곳 모네다 궁이다. 저항하던 아옌데도 여기서 살해됐다. 이후 피노체트는 악명높은 독재권력을 휘둘러 그의 통치기간 중 3000여명이 살해되고, 수천명이 실종됐다.

모네다 궁은 현대사의 굴곡을 간직한 채 처연하게 서 있었다. 호세는 “독재에 대한 저항과 투쟁, 국민들의 공감이 칠레의 국민 통합에 중요한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통된 경험과 지향점이 사회통합은 물론 경제개발의 발판이 됐다는 얘기였다. 실제 민주화 이후 칠레는 연평균 7% 이상의 고성장을 유지했는데, 자유시장 기조 속에서도 아옌데가 추진했던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큰 역할을 했다. 경제개방과 자유에만 초점을 맞춘 아르헨티나와 다른 길이었다.

다음날 방문한 국립 역사박물관은 이를 다시 확인해 주었다. 아주 작은 박물관이었지만, 사회의 지향점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었다. 특히 현대사 부분에서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과 자유ㆍ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상세히 소개했다. 마침 교사의 인솔 아래 현지 어린이들이 현대사 부분을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었다. 칠레 역사가 죽지 않고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에서 아르헨티나 멘도사로 넘어가는 안데스 고개. 해발 고도에 따라 숲과 황무지, 눈이 교차되면서 나타나는데, 산맥의 장엄함과 험준함이 사람을 압도한다.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남미의 심장=산티아고엔 칠레인의 숨결을 간직한 유적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아르마스 광장이다. 야자수와 유칼립투스가 심어진 작은 공원으로, 주변에 대성당(카테드랄)과 역사박물관, 시청사가 자리잡고 있고, 16세기 도시를 건설한 발디비아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칠레 최초의 공원으로 과거엔 투우도 열렸다고 한다.

이 공원은 작은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애잔하면서도 흥겨운 안데스 음악이 한켠에 울려퍼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술가들의 그림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다국적 여행자들, 데이트하는 젊은이들, 체스를 두거나 잡담을 하는 노인들이 어우러졌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4400달러로 한국의 3분의2 정도지만, 문화가 숨쉬는 광장이 산티아고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가장 큰 공원인 포레스트 파크는 산티아고를 가로지르는 마푸초 강변에 만들어져 있다. 마푸초란 스페인이 이 지역을 점령할 당시 최후까지 저항한 인디언 부족인데, 이를 강 이름에 붙인 것도 흥미로웠다. 포레스트 파크 안에는 현대미술관과 각종 컨벤션 행사가 열리는 가브리엘라 빌딩,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기증한 조형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산크리스토발 언덕 아래의 네루다 하우스도 칠레를 이해하기 위해선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칠레의 시인으로 1971년 노벨상을 수상한 네루다는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하는 등 정치에도 깊이 참여했다. 그는 마추픽추 등 남미 전통에서부터 민중의 삶을 노래한 정치시, 난해한 초현실주의 시까지 다양한 시를 썼다. 웅혼한 정신의 민족시인을 갖고 있다는 게 칠레의 자랑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은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갔다. 정상의 마리아상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예수상를 연상시켰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반대편 안데스 산맥에 햇볕이 비추었다.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칠레 경제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300m 높이의 72층짜리 코스타네라 빌딩도 골조가 완성돼 우뚝 서 있었다. 건물이 완공되면 남미의 최고층 빌딩이 된다고 한다.

물론 칠레는 빈곤층이 인구의 20%를 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빈부격차가 늘어나는 등 어려움을 안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통합과 개발의 길을 걷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태평양 연안의 발파라이소를 거쳐 아르헨티나 멘도사로 넘어가면서도 그 신선함은 잊혀지지 않았다. 마음이 가벼워서 그런지 안데스의 웅장함이 더 멋있게 보였다. 이제 현대 남미의 여러 모습에서 벗어나, 안데스 오지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hjlee@heraldcorp.com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지난해 10월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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