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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가족 여행기<32>잠재력을 소진하는 ‘희한한’ 콜로니의 나라...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이해준 문화부장]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기 직전 포즈두이구아수의 호스텔에서 클라우디오 브리체또라는 30대 후반의 한 여행자를 만났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예로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일하는 그는 유익한 남미 여행정보를 많이 제공해주었는데, 말끝마다 아르헨티나는 ‘희한한 나라(strange country)’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때 미국보다 잘 살았지만 부정부패 때문에 지금은 가난해진 이상한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남편이 대통령을 하면 아내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 사람들은 유럽식을 동경하며 대도시에 몰려 넓은 땅이 텅텅 비어 있다. 물건 값을 카드로 계산하면 1달러=4.5페소지만, 현금을 내면 5.5페소가 된다. 가난해도 일을 하려하지 않는다...” 그의 ‘이상한 나라’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르헨티나 여행기 서두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필자가 본 아르헨티나가 그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탱고와 정열의 나라, 치열한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진짜 모습은 헤아리기 힘든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팜파스 평원. 세계에서 8번째로 큰 국토를 가진 아르헨티나의 60% 이상이 팜파스 평원으로 이뤄져 있으며, 관개시설을 갖추면 얼마든지 경작이 가능하다.

▶엄청난 잠재력과 끝없는 경제불안=달려도 달려도 끝없는 평원이다. 저녁 9시 푸에르토이구아수를 출발해 다음날 오후 4시까지 19시간 로사리오를 향해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끝없는 팜파스 평원과 아열대 숲, 소를 키우는 목장, 외딴 마을들, 사탕수수와 같은 상업용 작물을 재배하는 농장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 놓인 왕복 2차선 도로가 외로워 보일 정도였다.

남한의 28배, 세계 8위의 넓은 국토를 지닌 나라라는 사실이 실감이 갔다. 아열대에서 한대까지 다양한 기후를 가진 나라, 기후나 토지가 농업과 목축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나라,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 그래서 환율이 조금만 올라도 수출이 활기를 띠어 경제가 금방 활기를 찾는 나라, 아르헨티나의 어마어마한 잠재력은 버스 안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정책의 실패로 끝없는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도 고실업과 물가가 문제였다. 아르헨티나의 20세기의 대부분은 정치불안과 반복적인 경제위기, 고물가, 자본이탈, 구제금융 등으로 점철됐다. 2001년엔 사실상 국가 파산상태인 대외부채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기도 했다. 현 정부는 돈을 찍어 경기부양에 나서 물가가 20% 이상 폭등하는 등 통제불능 상태다. 호스텔 직원은 “차를 마시는 도중에도 가격이 오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사라진 체 게바라 탄생지=로사리오를 방문한 것은 이곳이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인 체 게바라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도착 다음날 바로 그의 탄생지를 찾아 나섰다. 지도를 들고 골목을 몇차례 돌았다. 길거리에는 게바라의 탄생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태어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곳이 사유지여서 아무것도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좀 황당했다.

마침 관광안내 지도에 게바라의 벽화(Mural)가 표시돼 있었다. 좀더 생생한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물어물어 찾아갔다. 하지만 작은 공터의 벽에 그린 게바라의 얼굴이 전부였다. 주변엔 뭔가 불량한 기운으로 긴장감이 몰려와 두리번거리며 돌아서야 했다. 이걸 지도에 표시해 놓은 걸 보면 상품화 의도가 분명하지만, 콘텐츠엔 관심이 별 없는 것 같았다.

이어 로사리오를 관통하는 파라냐 강변과 아르헨티나 국기를 디자인한 반데라기념관, 도시 중앙의 보행자 전용도로인 코로도바 거리, 1973~1983년 사이 군사정권에 의해 체포 구금 납치 고문 살해된 사람들의 역사를 기리는 기억박물관(Museo de la Memoria) 등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로사리오가 3대 도시이지만,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축 처져 있었다.

아르헨티나 정치의 중심인 대통령궁으로, 앞쪽이 5월광장으로 이어진다. 현 대통령은 2007년 취임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로 2003~2007년에 대통령을 역임한 네스트로 키르치네스의 부인이다.

▶에비타 향수에 깃든 슬픔=구질구질한 날씨 탓인지 그런 상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지속됐다. 구름이 잔뜩 낀 데다 비가 간간이 뿌리는 을씬년스런 날씨에 유명한 산텔모 거리의 탱고는 종적을 감추었고, 특유의 활달한 길거리 문화도 사라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돌아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홉온호프(Hop-on Hop-off) 버스투어다. 주요 관광지 25곳을 연결해 어디서나 내렸다 탈 수 있는 버스인데, 아르헨티나의 정치ㆍ경제 중심지는 물론 유적, 박물관, 공원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데다 가이드의 목소리 녹음상태가 최악이고, 설명도 피상적으로만 이뤄져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버스는 ‘장미의 집’이라는 대통령궁과 그 앞의 5월 광장에서 출발해 경제부와 중앙은행,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징인 레푸블리카 광장의 오벨리스크, 콩그레스 광장의 의회 건물 등을 지났다. 아르헨티나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초기 이민자들의 거주지역이자 최고 명문 축구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의 홈 구장이 있는 라 보카에는 가난의 그림자가 짙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의 보행자 전용지역인 플로리다 애비뉴에서 뜨개질을 해서 파는 메스티조들. 인구의 90% 이상이 유럽계 이민자 후예인 아르헨티나에서 이들 메스티조들은 대부분 빈곤층이다.

가장 인기있는 곳은 ‘아르헨의 여인’ 에바 페론, 즉 에비타의 무덤이었다. 에비타는 빈민의 딸로 태어나 배우의 꿈을 안고 가출해 3류 극단을 전전하다 정치인 후안 페론을 만나 결혼, 27세 때인 1946년 퍼스트 레이디가 된 인물이다. 영부인으로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활동을 펼쳐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1952년 33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망하며 국민의 기억 속에 남았다.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은 나중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에비타’로 더 유명해졌다. 리콜레타 공동묘지에선 그녀의 무덤을 어렵게 찾을 필요가 없었다. 묘지엔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고, 꽃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페론과 에비타의 정책은 국가재정을 파탄으로 이끈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그녀에 대한 향수는 일종의 허상의 이미지에 기반한 것이었다. 국민을 하나로 묶어낼만한 국민적 영웅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리콜레타 공동묘지의 에바 페론 무덤.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페론이 실시한 정책에 대해서는 극단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콜로니’의 나라, 영원한 숙제 국민통합=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말은 콜로니(colony)와 네이버후드(neighborhood)였다. 네이버후드는 이웃 또는 지역이란 의미를 지니지만, 식민지를 뜻하는 콜로니라는 말이 동시에 쓰이는 게 의외였다. 콜로니는 네이버후드와 마찬가지로 이주자 집단거주지역을 의미하는데, 아르헨티나에는 이런 콜로니가 수없이 많다. 이탈리아 콜로니, 독일 콜로니와 같은 형태로 곳곳에 있으며, 각각 내적 유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화도 유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유럽계 이민자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이 모두 콜로니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독특한 인구구성이 제3세계 국가인 아르헨티나보다는 유럽의 모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선조의 고향을 빠뜨리지 않는다. 거리나 공원 이름에 유럽 국가명이 수없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사회의 발전과 국민적 에너지 결집을 위해선 고난 극복의 동질한 역사적 경험과 이를 이끄는 지도자가 필요한데, 아르헨티나에선 그걸 찾아보기 힘들었다. 독립 과정도 스페인이 프랑스와의 전쟁에 패하면서 나타난 권력의 공백상태에서 콜로니 지도자들이 프랑스에의 예속을 피하기 위해 나선 데서 비롯됐다. 지금도 대통령은 그 실체보다 이미지를 기반으로 부부가 계승하고, 지도층은 부패하고, 각각의 콜로니는 자신들의 정치ㆍ경제적 안위에만 신경쓰면서 사회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듯했다.

브리체또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희한한 나라’라고 불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브라질로 훌쩍 떠나버린 그도 마찬가지 콜로니스트일지 모른다. 아르헨티나가 탱고와 정열과 낭만의 나라로 알려진 것은, 필자의 경험으로는 본질과 거리가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스위스와 독일 콜로니의 고장 바릴로체로 향하면서도 이런 우울한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hjlee@heraldcorp.com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지난해 10월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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