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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더 강력해진 신자유주의 대안의 길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2008년 글로벌 금융 붕괴 이후 원흉처럼 지목된 신자유주의는 몰락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명한 사회학자 콜리 크라우치(영국 워릭대 경영대학원 거버넌스 공공관리 부문 교수)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어느 때보다도 더 정치적으로 강력해졌다.

수년째 독한 화살에도 왜 신자유주의는 이상하게 죽지 않는 걸까.

크라우치는 국가와 시장, 기업의 관계를 통해 그 이유를 찾아낸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3자 사이의 ‘안락한 조정’(comfortable acommodation)이다. 이는 국가와 시장의 대립으로 보는 신자유주의논쟁이 잘못됐음을 전제한다. 즉 시장과 기업을 같이 놓고 보는 게 아니라 제3세력 즉 거대 기업이 핵심주체로 참여하는 삼각관계로 보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는 국가ㆍ시장ㆍ거대기업의 안락한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제, 반독점법을 무너뜨린 자유주의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런 시각에서 신자유주의 쟁점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며 ‘순수시장과 완전 경쟁을 통한’ 자유경제라는 게 얼마나 본질과 다른지를 보여준다.

우선 신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한다는 ‘순수시장’은 없다. 모든 가격이 비교 가능하며 모든 것이 거래된다는 순수시장 조건과 달리 현실은 가격 없는 상품이 존재하며 시장은 외부성을 다루지 못한다. 또 시장의 진입장벽 때문에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축적되고 정보접근의 불평등, 강력한 이익집단이 정치과정의 내부자가 됨으로써 경제와 정치는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오히려 시장과 완전경쟁이 왜곡되고 무력해진 이유는 뭘까. 저자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반독점법의 무력화를 든다. 소수의 강한 기업만 살아남는 정책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줄이고 거대 기업에 권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인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특정기업의 독점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공무원들이 민간 부문 인력에게서 배우도록 장려하고 민간부문 컨설턴트들이 정부의 정책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경제의 정치 권력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다.

케인스주의 수요관리의 위기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신자유주의가 약속한 안정적인 대량 소비도 허상이었음을 저자는 밝힌다. 경제를 촉진하기 위해 빚을 지는 정부 대신 일부 빈곤층을 포함한 개인과 가구가 빚을 떠안는 ‘사유화된 케인스주의’가 바로 신자유주의 번영과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긴 비현실적인 돈을 통해 실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함으로써 이득을 얻었으며, 이런 무책임성이 공동선이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가 걱정하는 것은 기업의 정치권력화다. 문제는 기업 스스로 진화한다기보다 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하고 기업에 양도함으로써 벌어지는 양상이라는 점이다. 가령 초국적 기업에 부과되는 사회적 책무가 그것. 환경 및 아동, 노동과 관련한 사회적 책임의 경우, 그 책임 수행 여부가 기업의 틈새 수요 창출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은 평판이기 때문에 실제로 행동을 바꾸지 않고서도 주장과 자기광고를 활용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미 전작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빈 껍데기로 몰아가는 요소 중 하나로 글로벌 기업의 권력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거대 기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입장은 안락한 3각관계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제4의 세력, 즉 작은 시민사회를 통한 4자 구도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시장과 국가의 대립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신자유주의적 우파가 시장을 가리킬 때 실제로는 기업을 가리키는 오류와 좌파가 시장과 기업에 대한 대항력의 원천으로 본 국가가 정당의 이데올로기적 기원과 상관없이 거대기업의 헌신적 동맹자 노릇을 하고 있는 허점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적인 것을 넘어 공공의 가치를 추구할 가능성을 시민사회에서 찾은 것이다. 저자는 시민사회 조직들이 서로 다르고 때로는 대립하는 도덕적 의제를 추구하지만 그래도 도덕적 목표를 지닌 채 행동한다고 본다.

“어떤 종교나 신념 체계도 패권을 갖지 못하는, 경쟁하는 가치들의 복수성을 내포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라는 게 크라우치의 단언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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