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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보다 더 철학적인,자연보다 더 자연적인’서용선의 풍경
[헤럴드경제=이영란선임기자]여기 오대산 사자암을 그린 그림이 있다. 붉은 등걸의 적송(赤松)이 병풍처럼 드리운 가운데 오른쪽으로 육중한 검은 바위가 보인다. 화폭 앞으론 사자암의 처마와 담장이 그 끝자락만 살짝 드러나 있다. 넉채의 웅장한 계단식 사찰로 이뤄진 오대산 사자암 대신, 뒷산과 소나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 남다른 앵글이 신선하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오대산 적멸보궁 가는 길에 만난 사자암을 화가 서용선(61)은 이렇듯 독특한 구도로 그렸다. 산을 휘감는 자연과 역사의 은근한 흔적과 함께, 붉디 붉은 적송을 푸른 하늘, 녹색 산과 함께 당당히 그려넣음으로써 독특한 풍경 그림이 완성됐다.

인간 삶의 조건과 역사, 환경, 분단 등의 이슈을 다뤄온 화가 서용선이 다시한번 풍경 그림을 모아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에는 서울 팔판동의 리씨갤러리와 견지동의 동산방화랑 두곳에서 오는 22일까지 ‘서용선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작품전을 연다. 경기도 양평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그는 전국 곳곳을 부지런히 누빈다. 뿐만 아니라 베를린, 뉴욕, 시애틀, 멜버른, 오사카 등지에 장기 체류하며 작업과 전시를 병행 중이다. 


서용선은 녹색과 푸른색과 함께 기존 풍경화에선 잘 쓰이지않는 붉은색을 동원해 산의 장대한 등뼈와 나무줄기를 툭툭 치듯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빙빙 돌리지않고, 스트레이트 펀치를 던지듯 직설적으로 담아낸 그림들은 모처럼 만나는 시원하다 못해 통쾌한 풍경이다. 때문에 화폭에는 싱싱한 에너지가 감돈다. 현대적 기운생동이란 이런 것일 것이다. 그의 그림은 우리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자적이면서도 진정성있는 풍경화란 점에서 더욱 반갑다.

작가는 사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풍경’이란 용어를 별반 탐탁지 않아 했다. 지난 2008년 리씨갤러리에서 풍경화전을 열면서도 ‘산수(山水)’라는 명칭을 고집한 것도 그 때문. 그리곤 이땅의 산하 곳곳를 그린 작품전을 연거풔 열며 ’풍경’이란 부제를 달았고, 이번에도 풍경이란 명칭을 달았다. 그러나 그의 풍경화들은 자연을 그저 미적 향유의 대상으로 여기진 않는다. 자연의 경관을 재현하기 보다는 자연과 인간, 도시적 삶과 삶 속의 자연, 역사의 궤적이 깃든 자연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을 갖고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대산 일대를 그린 풍경들이 여러점 나왔다. 강원도 오대산의 장대하고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서용선의 시선은 우리 선조의 자취가 배인 문화적 흔적들에 맞춰졌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을 찾아내, 오늘에 불러와 환기시키는 작업을 동시에 시도한 것.

미술평론가 이인범 씨(상명대 교수)는 "화가 서용선의 풍경화의 위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다. 인간의 흔적이 스치지 않은 자연은 상상하기 힘들다. 순수한 자연을 향했던 화가 서용선이 그 풍경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곳이 인간의 삶, 즉 역사의 세계라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다. 더더군다나 ‘삶의 화가’ 서용선의 경우는 그렇다"며 "그의 풍경들은 상투적인 관광적 풍경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몸의 감각으로 녹색, 청색의 변주 같은 색채와 표현적인 붓질을 통해 누구에게든 자신들의 자연과 삶의 체험을 강렬하게 두드린다."고 분석했다. 


이어 "화가 서용선의 풍경그림은 자연을 대하는 이 시대의 어려움, 다시 말해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불편함, 자연과 인간 사이의 불화 속에서 그가 관통해 걷고자 했던 경험 리포트라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한동안 이 땅에서 시대착오적으로 읽혀지던 풍경 혹은 산수 그림들이 이제 당당하게 당대적인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편입되는 것 같다. 그의 그림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그리고 적어도 인간인 한 우리에게 그의 그림은 자연보다 더 자연적이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에 서용선은 오대산, 지리산, 철암 등을 그린 그림과 함께 미국 서북부 시애틀의 레돈도 비치를 그린 그림도 함께 내놓았다. 동산방화랑(02-733-5877), 리씨갤러리(02-3210-0467). 사진제공=리씨갤러리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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