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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이해준의 ‘희망가족’> 빙하가 빚은 수채화…그 자연의 경이, 환상 그 이상
<26> 대자연의 파노라마, 피오르…노르웨이 베르겐
병풍처럼 둘러처진 절벽에 깊고맑은 호수
만년설이 녹아 협곡 곳곳 떨어지는 폭포
그 사이 들어선 그림같은 마을 ‘장관’

해발860m 수직 절벽 지나는 플롬철도
기차 회전할때마다 색다른 풍경에 탄성
긴 시간·만만찮은 비용 든 만큼 큰 감동



[베르겐(노르웨이)=이해준 문화부장] 빙하가 빚은 걸작 ‘피오르(Fjord)’. 한국인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곳이지만, 실제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거리가 멀고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인에게 피오르가 아직도 신비로운 ‘로망’의 땅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피오르는 우리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만큼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필자와 둘째아들이 독일 베를린에서 피오르의 여행 기점인 노르웨이 베르겐까지 이동하는 데 2박3일이 걸렸다. 물론 항공기로 이동하면 몇 시간이면 되지만, 주변 풍경도 감상하고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기차와 페리를 이용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야간페리를 타고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해서는 종일 도시를 돌아다니기도 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슬로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베르겐에 도착한 첫날 어시장과 시내를 돌아본 다음, 두 번째 날 피오르 투어에 참가했다. ‘송네 피오르’의 가장 깊숙한 구드방엔과 플롬 지역을 기차와 버스, 유람선을 갈아타면서 돌아보는 대표적인 투어로, 1인당 하루 투어비용이 1045노르웨이크로네(NOKㆍ약 20만원)에 달했다. 우리는 유레일패스가 있어 660NOK(약 13만2000원)로 할인받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우리가 아시아~유럽을 거치며 지불한 투어비용 가운데 가장 비싼 금액이었다.


▶빙하가 빚은 태고의 신비, 최고의 걸작=피오르는 수만년 전 빙하의 움직임과 이로 인한 지표면의 침식으로 형성된 U자 또는 V자 모양의 깊은 협곡을 말한다. 협곡이 내륙 깊숙이 뻗어 있고, 여기에 바닷물이 들어차 마치 넓은 강이나 호수처럼 보인다. 빙하가 깎아낸 피오르의 수심이 수백m에 달하며, 인근 바다보다 더 깊은 곳도 있다.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은 1000m를 넘어 장엄하기 그지없다.

노르웨이 서해안엔 피오르 해안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피오르의 왕’이라 불리는 송네 피오르는 길이가 204㎞에 달하며, 수심이 깊은 곳은 1000m를 넘는다. 또 ‘왕관을 쓴 진주’라는 별명을 지닌 ‘예이랑에르 피오르’, 두 번째로 긴 179㎞의 ‘하르당에르 피오르’, 성질이 다른 지층이 합쳐져 아름다운 빛깔을 연출하는 ‘뤼세 피오르’ 등이 주요 여행지로 꼽힌다.

오슬로나 베르겐에서 기차와 버스, 유람선을 갈아타면서 피오르를 돌아보는 다양한 여행 코스가 개발돼 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고 모험을 즐기고자 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도보 코스도 개발돼 있다. 사계절 여행이 가능하지만, 여름 시즌인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피크를 이룬다. 여름철엔 빙하가 녹으면서 흘러내린 물이 곳곳에 폭포를 만들어 장관을 이룬다.

설렘을 안고 찾아간 피오르는 자연의 경이 그 자체였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 깊은 협곡 사이의 수정처럼 맑은 호수, 협곡으로 바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들, 그 사이에 들어선 그림 같은 마을들, 만년설을 뒤집어쓴 설산,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이것이 수만년 전 빙하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베르겐역으로 나와 오전 8시40분 보스행 기차에 올랐다. 1시간 정도 달려 산간마을 보스에 도착한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더 달려 피오르의 끝인 구드방엔으로 이동했다. 버스는 계곡과 산허리로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따라 달렸다. 협곡과 호수, 마을이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송네 피오르’의 지류에 해당하는 구드방엔 인근의 피오르. 유람선이 미끄러지듯이 물살을 가르며 움직일 때마다 색다른 풍경을 선사해 한시도 딴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자연의 경이=구드방엔에서 바라본 피오르는 산속에 만들어진 거대한 호수 같았다. 유람선을 타고 피오르에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유람선은 산과 하늘과 구름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보트가 협곡의 구비를 돌아갈 때마다 계속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경관이 있을까. 이 협곡은 마치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와 알프스의 영봉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호수들, 유럽의 전원마을들을 합쳐놓은 것 같았다.

같은 보트에 탄 다국적 여행자들도 넋을 빼앗긴 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보트가 움직임에 따라 갈매기들도 날아들었다. 빵과 과자 조각을 던지자 잽싸게 낚아챘다. 만년설로 덮여 있는 산의 정상 부위엔 하얀 구름이 걸쳐 있어 그 모습이 흘끔흘끔 보일 뿐이었다. 따뜻한 햇살을 받아 만년설이 녹은 물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호수로 내리꽂혔다.

이런 험한 여건에서도 사람들은 질긴 생명력을 보였다. 깊은 협곡에서도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배를 띄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작은 마을들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들은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듯했다. 여기서 자연을 인간의 의지에 맞춰 개조하거나 정복하려 한다면, 오히려 생존이 어려울 것 같았다.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지속성의 지혜였다.

2시간 동안 물살을 고요히 가른 보트는 오후 1시40분 플롬에 도착했다. 피오르의 다른 쪽 끝에 있는 마을로, 보트는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다. 여행자들은 여기서 내려 점심식사도 하고, 마을을 돌아보며 휴식을 취했다. 우리도 부드러운 빵에 건포도와 초콜릿을 넣어 만든 스칸디나비아의 대중음식인 ‘볼러(Boller) 빵’으로 간단히 요기한 다음 마을을 산책했다.

플롬은 인구가 500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깊은 산속이지만 피오르 여행자들이 들르는 필수 코스로, 연간 방문객이 5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마을 외곽으로 나가자 계곡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가운데, 산에서는 만년설이 녹으면서 이곳저곳에 폭포를 만들고 있었다. 그 속에 띄엄띄엄 자리 잡은 마을이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척박한 자연을 극복한 인간 승리=역에는 플롬 철도의 건설 과정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거의 수직으로 솟은 절벽에 터널을 뚫고 레일을 놓아 만든 ‘인간 승리’의 현장이었다. 이 철도는 베르겐 및 오슬로와 피오르 주민의 소통을 위해 1923년 건설을 시작해 20년 만에 완공됐다. 최대 난공사는 6㎞에 이르는 터널로, 대부분 노동력으로 이룬 것으로 당시의 노르웨이 기술력을 보여준다.

오후 2시50분이 되자 플롬 열차가 역을 출발해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철로였다. 플롬에서 뮈르달까지는 20㎞에 불과하지만, 해발 표고차가 860m에 달해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야 했다. 기차가 360도 회전해 올라가 방금 우리가 올라온 철로가 절벽 아래에 놓여 있었다. 기차에 탄 여행자들이 “와~” 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철로였다. 기차가 지그재그로 회전을 할 때마다 승객들이 왼쪽 창문으로 몰렸다가 다시 오른쪽 창문으로 몰렸다가 하면서 장관에 빠져들었다. “이런 철도를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중국에서 칭창열차를 타고 티베트 고원을 넘어가면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도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산 위로 올라오니 여기는 아직도 한겨울이었다. 온통 눈 세상이다. 산은 두툼한 눈에 덮여 있고, 햇살은 따뜻했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쌀쌀했다. 뮈르달은 오슬로~베르겐 구간을 운행하는 기차가 지나는 역으로, 여기서 어디든 갈 수 있다. 뮈르달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 베르겐에 도착하니 저녁 6시 가까이 됐다. 아침부터 시작한 환상적인 피오르 여행도 막을 내렸다.

방금 다녀온 피오르가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혼돈이 될 정도로 넋을 빼앗긴 여정이었다. 더구나 몇 시간 동안 한 번도 한눈을 팔 수 없었던 환상적인 풍경이 강한 잔영을 남기고 있었다. 피오르는 경건함에 빠지게 하는 자연의 경이와 함께, 그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삶을 영위하는 억척스런 인간의 노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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