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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선조들,열쇠패와 자물쇠에도 미감을 추구했노니…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여러 개의 열쇠와 별전(別錢)을 한군데 매달아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열쇠패는 우리나라만의 아름답고 독창적인 공예품이다. 중국, 일본도 일종의 기념화인 별전을 만들어 주고받긴 했지만 우리처럼 이를 엮어 열쇠패로 만들지는 않았다. 더구나 자수, 금속공예, 전통매듭, 심지어 죽공예까지 두루 응용된 열쇠패는 세계 어느나라에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열쇠패는 조선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즐겨 사용되던 민속품이다. 옛날에는 대문 열쇠, 곳간 열쇠, 각 방의 가구마다 붙어있는 자물쇠와 열쇠가 무척 많았기에 열쇠패(오늘날로 치면 열쇠고리에 해당)는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열쇠패는 열쇠꾸러미에 목각(나무새김)이나 녹각(사슴뿔)으로 만들어진 패를 함께 묶어 ‘목각 열쇠패’, ‘녹각 열쇠패’로 불렀다. 그 패에는 어디에 사는 누구의 열쇠인지, 어느 곳에 쓰이는 열쇠인지를 새겨 넣어 관리하기 편하게끔 했다.


별전 하나하나에 색을 입히고, 알록달록 색실을 수놓은 열쇠패들은 ‘우리 선조들의 멋과 미감이 이렇듯 탁월했구나’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또 단순히 아름다움만 추구한 게 아니라 길상문이나 행운을 상징하는 그림을 새겨넣어 복을 기원하고 있는 점도 도드라진다.

특별히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 감상용으로 만든 열쇠패는 혼수용으로 보면 틀림없다. 왕실및 사대부의 애장품으로 쓰였던 열쇠패는 별전, 괴불, 매듭, 자수 등 갖가지 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그 화려함이 각별하다.

혼례용 예물로 쓰인 별전열쇠패는 그 모양에 따라 주머니형 열쇠패, 화(花)형 열쇠패, 단선형 열쇠패, 쌍용형 열쇠패로 구분된다. 문양에 따라서는 박쥐, 쌍동자(혼인이나 장원급제시 금의환양 행렬 맨앞에 서는 화동에서 유래), 십장생, 처용 등으로 분류된다. 염색한 비단 천에 색실로 정성껏 수를 놓은 자수 열쇠패는 요즘 봐도 그 우아함과 화려함이 서양 명품은 저리 가라다.

이들 열쇄패는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12층의 신세계갤러리에서 11월4일까지 볼 수 있다. 신세계갤러리는 지난 1969년 ‘조선왕실유품전’을 시작으로, 2010년 ‘선비문화와 목가구’전 등 우리 고미술을 조명하는 전시를 꾸준히 개최해왔다. 올해는 조선시대의 열쇠패와 자물쇠, 빗장 등에서 발견되는 우리 문화재의 특별한 아름다움과 정신을 살펴보는 ‘복을 담고 행운을 열다’전을 기획했다. 


출품작들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쇳대박물관(관장 최홍규) 소장품 중 엄선된 유물들로, 오랜 세월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선조들의 멋과 품위가 담긴 생활공예품들이다. 전시에는 열쇠패 외에도 다양한 장식, 의례의 의미를 담은 자물쇠와 빗장 등 총 60여 점이 출품됐다. 모두 최홍규 관장이 오랜 세월 정성껏 수집한 컬렉션이다.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물쇠와 열쇠, 또 나무문의 잠금장치인 빗장은 그 실용적인 목적과 함께, 다양한 교훈과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은 형태와 문양이 당대의 독특한 미감을 엿보게 한다. 아울러 일상과 밀착된 삶의 태도와 신앙도 발견할 수 있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형상의 ‘거북이형 빗장’(조선후기,나무)은 등 부분에 국화 문양의 광두정을 박았다. 거북의 형상을 질박하면서도 단순하게 깎아낸 솜씨가 현대 조각에 뒤지지 않는다. 


물고기를 지극히 간결한 형태로 표현한 ‘물고기형 빗장’(조선후기,나무)도 좌우 대칭의 형태가 깔끔하다. 물고기는 예부터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아 빗장 디자인 등에 많이 쓰였다.

이번 전시는 화려함과 소박함, 창작의도와 재료, 물성을 넘나들며 이제는 잊혀져가는 우리 옛 문화에 담긴 독창성과 창의력, 유연한 상상력을 음미하게 한다. 선조들이 남긴 시각예술의 원형은 오늘 다시 봐도 특별하고, 귀하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신세계갤러리 인천점과 광주점을 순회하는 전시가 내년 1월 7일까지 이어진다. 사진제공=쇳대박물관, 신세계갤러리. 02)3210-192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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