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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영화제 찾은 아시아영화, ‘어둠의 시대를 감싸안다’
눈에 띄게 어둡고 무겁다. 시대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과 성찰이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아시아영화를 관통하는 정서와 흐름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 주요 부문에서 선보인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다양한 신작영화들이 어둠과 불안, 죄악의 시대를 그리고 있어 주목된다.

가장 두드러진 작품들을 선보인 곳은 일본이다. 지난해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이어진 이른바 3ㆍ11 재난의 그림자가 영화에 짙게 그늘을 드리웠다. ‘아시아영화의 창’에 초청된 작품 중 ‘온화한 일상’ ‘일본의 비극’ ‘희망의 나라’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등이 3ㆍ11과 그 이후를 다룬 작품이다. 이중 ‘일본의 비극’은 지난 2010년 불법 연금 사건(노령의 부모가 죽은 후에도 신고하지 않고 자식 및 유족이 생계를 위해 연금을 불법으로 수급한 사건)과 3ㆍ11 대지진을 조합한 이야기로 경기 침체와 대형 재난이 드러낸 일본 사회의 치부를 그렸다. ‘희망의 나라’와 ‘온화한 일상’은 각각 원전폭발과 방사능 누출로 인한 공포와 불안을 담았고, ‘만개한…’은 3ㆍ11의 후일담이다. 일본 영화에 정통한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최근 일본 영화에선 비극적 정조를 담은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다”며 “대지진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젊은 한국영화들을 사로잡은 것은 흉악범죄에 대한 공공연한 분노와 증오다.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가시꽃’의 이돈구 감독과 ‘누구나 제명에 살고 싶다’의 김승현 감독은 각각 조두순 사건과 유영철 사건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영화의 비전’ 부문 초청작 ‘공정사회’는 딸의 성폭행범에 대한 엄마의 복수극을 담았다.

과거 독재시대의 암울한 사회상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종교ㆍ정치적 갈등도 아시아 영화가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는 이슈다.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1980년대 고 김근태 전민주통합당 상임고민의 민주화 운동 시절 정권에 의해 받았던 참혹한 고문을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했다. 필리핀 영화 ‘유령’은 1970년대 초반 마르코스 독재 시대에 한 수녀원에서 일어난 비극을 담았다. 이란출신 감독이지만 고국에서 활동 금지를 당해 터키로 망명한 바흐만 고바디의 ‘코뿔소의 계절’은 이란의 이슬람혁명기 반혁명죄로 30년간 투옥된 쿠르드족 시인 사데그 카망가르의 비극적 실화를 그렸다. 필리핀의 브릴랸테 멘도사 감독의 ‘포로’는 휴양지에서 이슬람 분리주의 단체에게 납치된 외국인 관광객의 이야기다.

부산=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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