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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싸지만 싸지 않고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그놈의 엄숙주의를 벗다
공연계를 휩쓰는 ‘B급 문화’
‘대중들에 친숙한 가요계 촌스러움
‘DJ DOC·노라조 거쳐 싸이서 만개
‘아이돌 음악에 대한 반작용 분석
‘음악의 세련미는 A급 뮤지션 능가

‘기존인식 탈피 대학로 B급 무대
‘두뇌수술’·‘나는야 섹스왕’… 등
‘주류와 다른 새로운 메시지 전달
‘비주류의 연극계…주류로 재탄생



한국 ‘B급 문화’가 꽃 봉우리를 처음 맺은 곳은 길거리다. 홍대 앞, 대학로에서 흔하게 보이던 ‘날티’와 ‘싼티’가 가요, 공연계에 스며들어 주류까지 뒤집을 기세로 널리 유행하고 있는 게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다. 혹자는 B급의 정서는 고속도로 휴게소 따라 이어졌다고도 한다. 노상의 친숙한 촌스러움이 가요에선 DJ DOC, 컨추리꼬꼬, 노라조를 거쳐 싸이에 와서 만개했다는 분석이다. 대학로 극장가에선 최근 호러, 코미디 장르물이 전례 없이 큰 인기다. 정통, 주류를 비트는 B급 정서와 닿아있다. 관객의 취향과 기호 변화에 따라 과거 주류의 자양분에 머물던 비주류는 스스로 주류로 거듭나고 있다.

▶가요계의 진지함에 저항하는 또 다른 진지함=사실 가요 분야에서 ‘B급 정서’의 전면 등장은 올 초부터 조짐을 보였다. ‘개가수(개그맨+가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용감한녀석들’과 ‘유브이(UV)’ ‘형돈이와 대준이’를 비롯해 레옹을 패러디한 뮤직비디오로 ‘싼티’의 극치를 보여준 ‘노라조’까지 이미 가요계 저변엔 ‘B급 정서’가 짙게 깔려 있었다.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에 ‘강남스타일’의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점령은 결정타였다. 입소문으로만 떠돌던 ‘고속도로의 여왕’ 정희라의 ‘애로송’이 최근 케이블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등 ‘B급 정서’는 가요계에서 하나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B급 정서’의 대두는 기존 가요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이 일으킨 반작용이다. 반작용의 시작은 지난해 휘몰아친 ‘나는가수다(이하 ‘나가수’)’ 열풍이었다. 몇 년째 가요계를 휩쓴 ‘아이돌 음악’의 세련되고 멋진 비주얼에 열광하면서도 대중은 한편으론 공허함을 느꼈다. 공허함의 근원은 ‘과연 노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닿아있었다. ‘가수’들이 등장해 ‘노래’를 부른 ‘나가수’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일종의 해답이었다. 아이돌까지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에 대한 진지함을 보여주고자 애썼다. 진지함은 최근까지도 가요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코드였다.

그러나 과도해진 진지함은 대중에게 다시 피로감을 불러왔다. ‘나가수2’의 낮은 시청률과 대중의 식은 관심은 그 방증이다.

가요계에 확산된 ‘B급 정서’는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인 ‘재미’에 대한 성찰과 대세에 대한 반발 심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강남스타일’은 재치 있는 노랫말과 중독성 강한 비트, 사회를 비트는 유머 코드까지 두루 담은 ‘B급 정서’의 결정판이다. 그렇다고 포장이 ‘싼티’ 난다고 내용물까지 ‘싼티’ 나는 것은 아니다. 싸이가 보여준 음악의 세련미는 A급 뮤지션 이상이다. 뿐만 아니라 ‘개가수’들과 노라조 역시 음악적인 부분만 따로 놓고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완성도를 보인다. 결코 가볍지 않은 가벼움이다.

▶기존 인식을 전환하는 도구인 연극 속 B급 코드=대학로에서 B급 연극이라고 하면, 주류 연극들에 비해 연출 기법이 조악하고 그런 열악한 점들을 감추지 않은 연극이다. 주류와는 다른 시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개념’, 안티미학, 대안공연의 또 다른 지류다.

극단 그린피그의 ‘두뇌수술’은 B급 정서가 두드러졌던 연극으로 손꼽힌다. 지난 5월 공연 당시 연일 매진 행진을 이었던 이 작품은 진우촌의 1945년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미국의 슈퍼맨, 노라조를 우스꽝스럽게 접목시켰다. 한국전쟁 후 미군이 부잣집 아들이자 백치인 상도의 뇌와 가난하지만 똑똑한 무길의 뇌를 바꿔넣는 부분은 같다. 하지만 해방 직후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하자는 원작의 계몽적 메시지는 사라지고, 미 군정 상황에서도 온전치 못한 뇌를 가진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을 통해 블랙 코미디로 재탄생했다.
140개 공연장이 모여있는 대학로는 연극의 다양성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작품들의 산실이다. B급 공연 역시 품에 담은 대학로는 인디밴드의 공연뿐만 아니라 비주류를 형성하는 연극들도 모두 함께 만날 수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그런가 하면 ‘나는야 섹스왕’에선 “학문(항문)에 힘쓰고 학문(항문)을 닦아야 하는 것”이라는 저속한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두 작품을 연출한 윤한솔은 “일부 B급 정서를 의도해서 넣었다. 기형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요소가 들어가다 보니 계속 매진이었다”면서도 “호러, 코믹 등 장르물을 B급으로 본다면 B급이 유행인 건 분명하지만 얼마나 지속할지, B급이란 용어가 지금의 현상을 읽어내는 적절한 용어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 온 미디어’는 에우리피데스의 고전 비극 ‘메디아’를 해체해 한 편의 쇼로 탈바꿈해놨다. 무성영화의 신파조 대사, 이종격투기,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장면 등 미디어의 선정성, 조작성을 비판하는 이 작품은 멀티미디어 세대인 관객에게 새로움을 던진다.

<문영규ㆍ정진영 기자>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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