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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급 스타일', 왜 뜨나?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원래 문화지형도에서 ‘B급’이라 함은 주류에 들어가지 못한 하위문화를 일컫는다. 그래서 비주류라고도 하고 조악하고 엉성한 느낌이 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건 분명 ‘메인스트림’에 대한 반발도 포함된다.

하지만 요즘 뜨는 ‘B급’은 조금 다르다. ‘B급 문화’가 뜬다기보다는 ‘B급 스타일’이 뜨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B급 스타일이지 B급 음악은 아니다. 음악의 퀄리티와 완성도는 B급이 아니다.

유세윤과 뮤지의 UV와 정형돈과 데프콘의 그룹 ‘형돈이와 대준이’, 하하와 스컬이 레게와 일렉트로닉을 합쳐 만든 ‘부산 바캉스’ 등 개그맨 가수, 일명 ‘개가수’들의 음악이 먹히는 것은 B급이라서 뜬 게 아니다. B급 스타일을 차용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도의 치밀한 마케팅이다.

그래서 B급에 대한 오해가 생긴 것 같다. 조악하고 마이너한 문화가 치고 올라온 게 아니라 세련된 음악인데 단지 B급 스타일을 가져왔을 뿐이다.

UV나 ‘형돈이와 대준이’의 음악에서 개그 코드를 집어넣고 스스로 망가지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건 대중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 너무 진지하고 엄숙하게 접근하면 대중들이 안 듣는다. 만약 ‘강남 스타일’을 문화적으로 강남보다 세련되고, 어쩌고 저쩌고 한다면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라며 유치하면서도 코믹한 춤을 곁들이니까 미국과 유럽에서도 서울의 강남 스타일이 뭔지 궁금하게 됐다.
B급의 당당함을 내세우는 스타일로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싸이는 이 시대 뛰어난 문화소통가다.

하지만 B급 스타일도 웃기기만 하고 흐느적거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80~90%는 노는 분위기지만 10% 정도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는 수업시간인 50분 동안 정말 하고 싶은 진지한 이야기는 10분 안에 끝내고 나머지 40분은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라는 말과 같다.‘형돈이와 대준이’의 ‘올림픽대로’의 마지막 가사는 ‘올림픽대로가 막혀요. 지금은 어딜 가나 막혀요/내 인생도 니 인생도 우리 인생도 다 막혀요’다. ‘용감한 녀석들’의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에도 ‘밤새워 써내려간 손편지를 준비해. 차라리 편지봉투 안에 상품권을 넣어라!’라는 반전 가사가 있다. 강남 스타일에 있는 ‘나는 사나이/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라는 표현도 음미해볼 만하다.

B급 스타일의 부상에는 전문가와 일반인,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는 사회현상이 맞물려 있다. 일반인도 전문가 못지않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가수만이 노래하는 건 아니다. 개그맨이 노래해도 가수보다 나을 수도 있다. 대중도 노래할 수 있다. 이는 일반인과 아마추어의 퀄리티가 높아짐을 의미하며 비주류가 스스로 주류라고 선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싸이는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자 아티스트다. 하지만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싼티’이며 춤은 이상하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일반인이 추는 막춤과 비슷해 친숙하게 다가온다. 음악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음악적 영감과 감성을 악보로 옮기는 식의 작곡은 과거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이제 ‘앱’만 깔면 컴퓨터가 대신해준다. 아이돌 가수의 히트곡을 대거 작곡한 ‘용감한 형제’는 악보도 못본다.

결국 B급 정서는 전문가보다는 일반인의 사고방식임을 알 수 있다. 인터넷과 블로그에서의 글쓰기와도 상통하는 정서다. 기자 생활을 20~30년 해야 논설위원이 되는 문화와는 다르다. 절대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키는 ‘대중’이 쥐고 있다. 음악은 즐거우면 된다. 수용자, 소비자, 시청자 권력이 커지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A급을 상정하는 B급은 구시대적 유물이다. B급은 즐겁고 솔직하게, 그리고 철저히 대중지향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전현무는 안 먹혔다. 과거에는 아나운서와 ‘싼티’ ‘밉상’은 상극 개념이었다. 싸이나 전현무 자체가 기성 권위에 대한 도전일 수 있다.

싸이는 특권층의 상징인 강남의 멋과 권위를 전복했다. 대단한 도전이라기보다는 강남이라며 폼 잡는 것들을 야유했다. 방법은 ‘키치적이고’(통속적이고 저속한) ‘양(양아치)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B급 스타일은 자기 자신을 비판 대상에 포함시켜 ‘내 속에 있는 허위의식’까지 드러내보인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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