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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겸재에게 오마주…인왕산, 흑백 조화에 언어를 더하다
재독화가 차우희 30일부터 표갤러리서 개인전
겸재의 인왕제색도 헌정작
‘오마주 투 정선’ 비롯 30여점

천·유화 이용한 콜라주 기법
숫자·알파벳 등 기호 가미 표현
작가만의 예술언어로 풀어내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1676~1759). 그는 오늘날에도 많은 작가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너나없이 중국 그림을 본뜨던 시절, 겸재는 우리 고유의 미감이 담긴 그림을 그리려 했다. 우리의 주체성을 살려 그린 그의 진경산수화는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하는 차우희(67) 화백이 겸재에 대해 오마주를 바친 작업들을 선보인다.

차 화백은 서울에 오면 서촌(효자동)에 머물며 작업한다. 서촌은 조선시대 겸재가 살던 지역. 겸재는 75세 되던 해 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 비에 젖은 인왕산을 묵직한 농묵으로 절묘하게 그려냈다. 그 그림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는 ‘금강전도’와 함께 겸재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인왕산 바위와 낮게 깔린 구름을 중량감 넘치면서도 대담하게 표현한 그림은 오늘날 봐도 세련되고, 멋스럽다.

차 화백은 지난해부터 겸재의 이 걸작에 헌정하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인왕산에 남다른 애착을 느끼고 있던 터였기에 작업엔 탄력이 붙었다.

인왕산을 모티브로 했으나 그의 그림엔 실경(實景)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차우희만의 추상적 언어들이 가득하다. ‘오마주 투 정선(鄭敾)’이라 명명된 작품을 위해 작가는 여러 겹의 천을 손바느질로 일일이 이어붙여 콜라주한 뒤 캔버스에 올린다. 그리곤 그 위에 유화 물감을 여러 번 얇게 덧바르며 추상적인 풍경을 만든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는 작가의 사색과 끈기가 은은히 배어 있다.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하는 차우희 화백이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을 예찬하며 그린 ‘Homage to JungSun’.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헌정하는 작품으로, 여러 겹의 천을 콜라주한 뒤 물감을 입히고 기표를 넣은 추상적 풍경화다.

이들 신작을 모아 차우희는 이달 30일~9월 28일 서울 한남동 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에는 겸재에 대한 예찬이 느껴지는 대작 등 30여점이 나온다.

1981년 독일로 이주해 베를린을 중심으로 지구촌을 유목민처럼 떠돌았던 차우희는 오랫동안 ‘여행’을 테마로 작업했다. 1990년대 초 ‘오딧세이의 배’, 1990년대 ‘Stray Thought on Sails’, 2000년대 ‘Sail as Wing’을 발표했던 그는 이번에는 도심 인왕산을 그만의 덤덤한 예술언어로 풀어냈다.

그의 작품은 마치 물처럼 ‘무’에 가까운 백색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알쏭달쏭한 검은 면들과 숫자, 알파벳이 살짝 더해진다. 수학 기호 또는 기하학적 면을 연상케 하는 차우희의 기표들은 작가가 일상 중 만난 특정 장소나 인물, 시간을 가리킨다. 일종의 비밀스러운 상징언어인 셈.

작가는 이 기표들을 안착시키기 위해 무수히 많은 드로잉을 거듭한다. 즉흥적으로 그려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는 조형성과 기표가 하나로 부합됐다고 느낄 때 비로소 그려넣는다.

차우희는 그간 흑과 백으로만 이뤄진 그림을 그려왔다. 이는 화폭에 오로지 ‘정신의 세계’만 남길 바라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근작에선 백색과 함께 땅의 색조가 여리게 반영돼 작업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02)543-7337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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