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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 0과 1만 존재하는 세계…클릭만으로도‘유령’이 된다
컴퓨터 편리성 추구하는 21세기
디지털 세상 섬뜩한 이면 보여줘

시청자에게 어려운 IT 범죄수사물
성적 지상주의 등 사회 현상 녹여
반전에 반전 극적 재미 더해 인기


사이버범죄 수사 드라마인 SBS ‘유령’은 어렵고, 그래서 지루해질 수 있고, 집중해서 봐야 한다. 그런데도 시청률이 꾸준히 올라가 14%를 넘겼다. 어려운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 해도 완성도만 높다면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게 과거와 달라진 시청패턴이다.

‘유령’은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에 이은 범죄수사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자들은 진실을 은폐하는 현실에서 죽은 자와 이를 조사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내 부검의를 통해 사건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가 ‘싸인’이었다.

‘유령’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e-메일, 트위트, 블로그 등 사이버 세계의 섬뜩한 이면과 가려진 진실을 찾아나서는 IT범죄수사물이다. 김은희 작가의 끈질긴 취재력과 장대한 스케일은 충분히 칭찬받아야 한다. 장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달라진 반응은 우연히 이뤄진 성과가 아니다. 좀 더 수준 높은 드라마를 요구하는 시청자의 기대에 제작진이 부응했기 때문이다.

‘유령’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사회적 사건들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어렵더라도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초반 여배우 신효정(이솜)이 죽었을 때는 온라인 악성 댓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신효정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신진요)라는 카페가 등장한 것도 사회문제화됐던 사건이 연상된다. 외부에서 증권회사 시스템을 파괴하는 디도스 공격과 원자력발전소 등 국가 주요기관 시스템 공격, 해킹과 e-메일,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학생의 죽음을 학교 괴담 형태로 풀어내 성적지상주의를 파헤친 것도 충분히 현실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때로는 안타까움과 때로는 통쾌함을 느끼게 해줬다. 

사이버 세계는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이면에는 섬뜩한 일도 자주 발생시킨다. 사이버 세계의 가려진 진실을 찾아나서는 ‘유령’사이버수사팀

어떨 때는 무미건조하다가 어떨 때는 감정과잉에 빠지는 멜로가족극과는 다르다. ‘유령’은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사건 속에 스릴과 서스펜스를 동반하는 전개력을 보여준다. 한순간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반전이 이뤄지면 그만큼 효과는 배가된다. 한영석 형사(권해효)의 죽음도 반전이었지만 자동차 해킹을 통해 원격조정에 의한 움직임으로 타살을 밝혀낸 것은 스마트화한 자동차를 공부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이야기다.

범인의 스파이가 경찰 내부 직원 4명 중 누군지를 찾아가며 계속 시청자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낚여도(?) 즐겁다. 제작진과 시청자가 벌이는 일종의 퍼즐게임이다. 4명 중 강응진 박사(백승현)가 경찰 내부 스파이임을 밝혀내는 것도 김우현이 키보드에서 입력되는 데이터를 가로채는 해킹 기법인 ‘키로킹’이라는 전문적인 방식이었다.

이런 사건들을 관통하는 배후에는 실제의 모습과 IT 기기 뒤에 숨은 모습이 전혀 다른 세강증권 대표 조현민(엄기준)이라는 ‘팬텀’(유령)이 있다. 에피소드는 매회, 또는 2~3회마다 달라지지만 전체적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것도 조현민 때문이다.

사회가 거대한 프로그램화되고 있고 컴퓨터가 없으면 안 되는 디지털 세상이 0과 1로 나눠지듯 조현민에게는 사람도 필요한 사람과 필요하지 않은 사람, 두 가지로만 분류된다. 그래서 필요치 않은 사람은 마우스로 클릭해 지워버려야 하는 존재다. 섬뜩한 발상이다. 조현민은 이렇게 CK전자 남상원 대표와 김우현(소지섭), 작은아버지 조경신(명계남), 염재희 과장(정문성), 임치현 검사(이기영)를 차례로 제거해나갔다.

원래 세강그룹 오너였던 아버지를 작은아버지 조경신에게 잃은 아픔을 담고 있는 조현민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가 기대된다. 이게 ‘유령’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소지섭(김우현 얼굴을 한 박기영)과 이연희(유강미)는 업무를 수행하는 관계이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어서 멜로 라인이 없지만, 소지섭과 함께 활약하는 ‘미친소’권혁주 팀장(곽도원)의 집요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연기가 재미를 주고도 남는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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