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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토크쇼는 파워게임?
‘자니윤쇼’ 부터 ‘힐링캠프’까지 들여다보니…진행자에서 게스트로, 제작진에서 시청자로 권력이동 최근의 대세는 ‘힐링’
예능 프로그램의 발전이 눈부시다. 몇 년 사이 방송콘텐츠 중 가장 빠르게 발전해온 영역은 예능이라고 말들 한다.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금세 ‘올드 패션’이 돼버리는 게 한국 예능이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재를 자주 따왔던 한국 예능PD들이 요즘은 일본 TV에서 별로 참고할 게 없다고 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위력도 만만치 않다. 안방극장의 승부는 예능에서 난다고 말할 정도다. 정치인은 ‘힐링캠프’ 출연으로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예능의 최고 격전지인 일요일 저녁에는 리얼 버라이어티형 예능들이 방송사의 자존심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발전사는 크게 두 갈래 흐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쇼와 교양프로그램의 합성어인 ‘쇼양’이라 불리는 예능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토크쇼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발전과정을 훑어보는 게 지금 예능을 이해하는 데에는 필수적이다.

진행자의 이름을 내건 본격적인 토크쇼는 1989년 시작된 ‘자니윤쇼’다.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갔던 자니윤은 자니 카슨의 ‘The Tonight Show’에 30회가량 게스트로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후 89년 귀국해 KBS에서 ‘자니윤쇼’를 진행하며 토크계의 새 바람을 일으켰다. 

▶서세원 이후 한국 토크쇼는 바뀐다= 자니윤쇼는 이후 한국 토크쇼의 전형이 돼 ‘주병진쇼’ ‘이홍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의 플러스 유’ 등으로 이어졌다. 99년부터 4년여간 방송된 ‘서세원쇼-토크박스’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서세원쇼에는 실루엣토크 스타만찬 등의 코너가 있었지만 ‘토크박스’ 코너는 장안의 화제가 됐다. 진행자인 서세원은 게스트들을 쥐락펴락하며 토크의 방향을 이끌고 갔다.

승승장구하던 ‘서세원쇼’가 2002년 시민단체에서 폐지운동을 벌여 문을 닫게 됐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이유는 서세원쇼가 연예인들의 홍보창구로 전락했으며 연예ㆍ오락프로그램의 저질화를 선도한다는 것이었다. 서세원은 현란한 입담으로 예능 MC로 군림했지만, 권력화의 유혹을 떨치지는 못했다. 게스트는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털어놔야 했다. 점잖은 이재룡은 막춤을 춰야 했고, 이홍렬은 콧구멍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었다. 


▶토크쇼 권력은 진행자에서 게스트로, 제작진에서 시청자로= 최고의 예능MC가 어느 순간 갑자기 프로그램에서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던 것은 토크쇼의 권력이 진행자에서 게스트로, 제작진에서 시청자로 넘어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간파하고 시청자에게 겸손하게 다가간 MC가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MC와 게스트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진행자다. 그는 상대를 골탕먹이는 개그는 어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편안하고 친근한 ‘착한 진행’으로 장수하며 국민MC에도 등극했다.

서세원 등 MC가 권력을 쥐고 흔들던 시절 유재석은 코너 진행자나 리포터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오랜 무명 시절을 겪으며 좌절하지 않고 겸손한 이미지를 계속 유지한 유재석은 남을 놀리기도 하지만 자신은 더 망가질 줄 아는 배려형 MC로, 어떨 때는 진행자와 게스트가 한데 섞여 노는 ‘놀자형’ MC로 자신의 진행 스타일을 특화했다.

유재석과 함께 강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강호동도 ‘무릎팍도사’와 ‘강심장’ 등의 토크쇼로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강호동은 세금논란으로 지금은 잠정은퇴한 상태지만 방송에 복귀하면 유재석과 함께 토크쇼의 양강 자리를 다시 꿰찰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최근에는 토크쇼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월요강자였던 ‘놀러와’가 노후한 느낌을 주고 이 자리를 ‘힐링캠프’ ‘안녕하세요’가 치고 올라왔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아날로그형 진행으로 일관했던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폐지됐다. ‘스타부부쇼 자기야’는 이야기 소재와 관계망이 다양한 데다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강점을 지니고 있어 안정적이며, ‘해피투게더3’는 너무나 익숙해진 분위기를 개그맨들의 투입 등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버라이어티 토크로 바꿔 활력을 살려냈다. ‘강심장’과 ‘세바퀴’, ‘고쇼’ 같은 토크종합선물상자형들도 흐름에 따라 인기 등락을 겪고 있다.

비주류, 마이너 감성의 ‘라디오스타’도 호흡이 길고 장황한 이야기보다는 짧게 툭툭 치는 스타카토형 토크로 촌철살인과 엑기스 토크들을 대거 살려 ‘메인’으로 자리잡았다.

▶요즘 토크쇼 트렌드는 소통 공감 격려 치유 위안 = 최근 토크쇼의 가장 큰 흐름이자 화두는 소통과 치유, 공감, 격려해주기, 위로받기다. 연예인의 신변잡기토크와 폭로성 토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힐링캠프’나 ‘승승장구’ ‘이야기쇼 두드림’이라는 토크쇼를 통해 게스트도 치유받고 시청자도 위로받는다.

인위적으로 짠 토크나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토크와 행위보다는 공감을 유도하고 감동과 위안이 있는 토크쇼가 큰 인기다. 이는 우리 사회에는 그만큼 힘들고 피로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다들 위로받고, 다들 비슷한 처지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한다. ‘힐링캠프’는 조용하고 밋밋한 1인 게스트 토크쇼라는 태생적 한계를 게스트에 맞는 ‘고민 치유 토크’에 초점을 맞추며 극복했다. 게스트에 맞는 상황이 주어져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솔한 고백이 나오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는 되는 셈이다.

무조건 게스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편안한 분위기와 환경이 제공돼야 게스트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진솔한 토크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힐링캠프’는 출연가능한 게스트 직업군이 넓어졌다.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편하게 볼 수 있는 ‘힐링캠프’ 분위기를 선호하고 있다. 자극보다는 공감, 이성보다는 감성을 건드리는 저공해 토크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고 심심하고 밋밋한 토크쇼가 아니다. 감성적이면서도 디테일은 살아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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