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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코’ ‘폴 오스터’에도 칼날 대다
“탐정소설을 읽는 것이 내게는 담배나 술과 같은 중독이다.” W. H.오든은 추리소설이 예술과는 무관하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추리소설에 대한 실큼하지만은 않은 중독을 고백한 바 있다.

과연 추리소설은 매혹이고, 긴 역사만큼 많은 중독자를 양산했다. 시쳇말로 ‘추리소설 폐인’을 꼽자면 영국 추리작가 클럽 회장을 지낸 줄리언 시먼스를 빼놓을 순 없다. 그리고 그의 저작 ‘블러디 머더(김명남 옮김/을유문화사)’는 추리 소설사를 종합한 결정판이자 장르 비평의 시금석으로 평가받는다.

추리소설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그는 추리소설이 순수문학보다 순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 한계를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추리 소설 역시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에드가 앨런 포가 추리 형식을 취했단 이유만으로 그를 여느 통속 작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위트와 유머로 가득하다. “이 책은 중독자의 책일 뿐, 학자의 책이 아니다. 열광과, 이따금 느낀 실망을 기록한 책이지, 카탈로그나 백과사전이 아니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때로 그의 비평은 편애의 기록에 가깝다. 예를 들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는 흡사 어른이 아이들과 놀아 주는 듯한 태도가 엿보인다거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장르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 자기만족적 태도가 불쾌하다고 냉소할 때 혹자는 머리를 갸웃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신랄한 평가와 뜨거운 논쟁이야말로 추리소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저자가 겨냥한 바이다.

입문자에겐 시대별 대표 작가와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짚어내는 가이드북이자 중증의 중독자에게는 서스펜스와 스릴로 가득 찬 서가의 한쪽에 꼭 ‘모셔 두고’ 싶을 만한 역작이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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