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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이해준의 ‘희망가족’> 삶·죽음 경계마저 사라진 버닝가트〈갠지스 강변 노천 화장터〉…온종일 시신 태우는 연기만
<9> ‘영혼의 땅’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 옆 ‘영혼의 계단’ 가트엔
인간과 신, 삶과 죽음이 공존
빨래하는 사람·순례자·잡상인·관광객…
화장 기다리는 시신도 줄지어 기다리고

쓰레기·짐승 배설물로 뒤범벅인 골목엔
순례자들이 무심히 맨발로 걸어다니고


[바라나시(인도)=이해준] 인도 바라나시(Varanasi)에 와서는 여행기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어둡고 음습하며 우울한 분위기에 압도돼 있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신성한 도시’ 바라나시가 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네팔 룸비니에서 국경을 넘은 후 종일 달려 바라나시에 도착한 날 저녁, 우리를 맞은 것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와 먼지였다. 거기에 어둠까지 짙게 깔렸다. 우중충한 숄을 머리까지 푹 뒤집어쓰고 눈만 빠끔히 내놓은 인도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 쓱 나타났다가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괴기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유령의 도시’에 온 듯했다.

안개는 다음날 아침에 더욱 심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바로 ‘갠지스(Ganges) 강’이었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날이 차가운데도 신성한 물로 몸을 씻기 위해 갠지스 강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이었다. 비록 강물이 오물과 쓰레기로 탁해져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필자에겐 평범한 강으로 보였지만 그들에겐 ‘숙명의 강’이자, ‘영혼의 강’이었다.

그것은 바라나시가 준 충격의 작은 출발에 불과했다. 식사를 위해 바라나시 구시가지의 골목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경악했다. 두 사람 정도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은 소를 비롯한 동물들의 배설물과 쓰레기, 오물 등이 범벅이 돼 널려 있었다. 

바라나시 구시가지의 중심 도로. 상인들과 각종 호객꾼, 순례자가 뒤섞여 있다. 이 메인 도로 옆으로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어 잘못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미로 같은 골목에는 작은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숄을 비롯한 의류가게에서부터 종교용품ㆍ기념품ㆍ토속제품ㆍ신발ㆍ장난감 등을 파는 가게는 물론 차이를 비롯한 차와 전통요리인 뿌리ㆍ커리ㆍ빵을 파는 음식점들 까지도 골목 곳곳에 박혀 있었다. 이들 식당에서는 삶고, 끓이고, 굽고, 튀기는 냄새가 소똥 냄새와 뒤섞였다.

냄새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음식점에선 석탄을 망치로 두들겨 깨거나 나무를 꺾어 불을 지폈다. 짙은 안개로 습해질 대로 습한 공기에 짙게 배인 소똥 냄새가 석탄과 나무를 태우는 매캐한 냄새까지 혼합이 돼 숨을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가게에서는 쓰레기를 좁은 골목으로 휙휙 던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개와 소가 그것을 핥기도 하고, 먹기도 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인간의 ‘원초적인’ 생태계 사슬이 작동하는 것 같았다.

바라나시 구시가지엔 ‘숙명의 땅’을 순례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구시가지 중앙에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사원 가운데 하나인 ‘골든 템플(Golden Temple)’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을 순례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그 사원을 한 바퀴 돌고,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작은 사원을 돌면서 각종 조각에 손을 대고, 이마를 대고, 꽃과 향을 바쳤다.

순례자들은 상점에서 버린 물과 소똥으로 끈적끈적해진 골목을 맨발로 걸어다녔다.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들을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질문이 몰려왔다.

구시가지에서 식사를 마친 다음, 갠지스 강변의 가트(Ghat)로 향했다. 가트는 강 옆으로 쭉 이어진 계단이다. 그것을 따라 갠지스 강변을 산책하고 싶었다. 하지만 낭만적이어도 너무나 낭만적인 생각이었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강이 아니라 신성한 강이었다. 낭만적 산책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영혼의 계단이었다.

갠지스 순례의 중심으로 메인 가트라고 불리는 ‘브라흐마의 계단(Door Step of Brahma)’으로 가려면 먼저 호객꾼(삐끼)들과 싸워야 했다. 이들은 단순 호객이 아니었다. 아예 지나가는 사람을 잡거나 멈춰 세우기까지 했다.

가트에 접근하자 걸인들이 우리를 맞았다. 이들의 모습은 가엽다 못해 처참했다. 망토와 담요를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거나 아예 누워 있기도 했다. 남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강변에는 보트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제단도 규칙적으로 배치돼 있었다. 가트에는 호객꾼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트를 어슬렁거리는 인도인들, 탁한 강물에 몸을 던지는 순례자들, 물고기와 갈매기에 “워이~ 워이~” 하면서 먹이를 던지는 사람들, 잡상인들, 강물을 퍼가는 사람들, 빨래하는 사람들, 카메라를 둘러맨 관광객들, 물을 마시러 내려온 소 등이 어지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 가트엔 크리켓을 하며 즐겁게 놀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신이 난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활짝 웃으며 “헬로~”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갠지스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것뿐만 아니라 젊음이 피어오르는 현장이기도 했다.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갠지스 강변의 ‘버닝 가트’. 시신을 화장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옆으로 장작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고,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이 계단에 계속 내려지고 있다.

우리는 가트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했다. 죽은 사람을 강변에서 화장하는 ‘버닝 가트(Burning Ghat)’가 있는 곳이었다. 버닝 가트 가까이 가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말로만 듣던 노천 화장이 이뤄지고 있었다.

장작을 높이 쌓아올리고 그 위에 시신을 올린 다음, 불을 피우고 있었다. 장작이 완전히 타고 사람이 재가 되는 데에 24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매일 화장이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장작을 태우고, 사람을 태운 불꽃이 가트에 넘실거렸다. 장송곡도 없었고, 죽음과 이별을 슬퍼하는 울부짖음도 없었다. 이따금 망자를 숙명처럼 따라다녔던 한 많은 윤회의 끝을 염원하는 듯한 외줄기 긴 외침이 들려올 뿐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면서 긴장감이 몰려왔다. 숙연해졌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 모두 경건하고 긴장된 표정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바로 여기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갠지스였던 것이다.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은 것인가,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짧은 순간이지만 끝없는 질문이 몰려왔다.

이곳에서 화장을 하고 그 재를 갠지스 강에 뿌리면 삶과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다음날 부처가 온갖 수행 끝에 득도를 하고 처음으로 설법을 행한 ‘사라나스(Saranath)’를 돌아본 다음, 다시 갠지스 강가로 나갔다. 짙은 안개가 상당 부분 걷히고, 갠지스에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겨울이라 해도 해가 비추면 바라나시의 기온이 빠르게 올라간다. 그러자 더 많은 인도인이 갠지스에 몸을 씻고 있었다. 가족 단위로 순례를 와 목욕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갠지스를 보트를 타고 더 둘러보기로 했다. 가트엔 보트 호객꾼들이 득시글거렸다. 우리는 앳돼 보이는 한 아이를 따라갔다. 부모를 돕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보트에 오르자 그가 직접 노를 젓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 아이가 노를 젓도록 할 수 없다며, 다른 사람이 노 저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그의 직업이라며, 우리가 탄 배를 강으로 밀어버렸다.

‘라키(Laky)’라는 그 아이는 열세 살로, 대대로 노를 젓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방학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노를 저었는지 솜씨가 능란했지만 아무래도 힘겨워 보였다. 신분에 의해 직업이 결정되고, 대대로 ‘상속’되는 카스트 제도의 희생자로 보였다.

그가 안쓰러워 중간에 노를 달라고 해서 필자가 저었다. 라키보다는 힘이 셌지만 숙련되지 않아 배는 이리저리 요동쳤다. 아이들도 노를 젓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필자가 계속 저었다. 아이들은 달라는 노를 주지 않았다며 불만을 쏟아냈지만 그건 유희가 아니라 열세 살의 라키에게 노를 젓게 했던 데에 대한 미안함과 사죄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노를 저어 다시 북쪽의 버닝 가트로 향했다. 어제와 같이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연기와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후라 그런지 어제 오전보다 훨씬 많은 화장이 이뤄지고 있었다.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들도 가트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곳곳에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유족과 친지들, 구경꾼들이 가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시 가슴이 쿵쾅거렸다. 바로 죽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지만 거기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불안이나 공포가 잠재해 있었다. 영원한 이별이 주는 슬픔을 뛰어넘어 가슴을 짓뭉개버리는 듯한 허망함, 공허함, 회한 또는 어떤 고통이 복합된 참담함 같은 것이었다. 버닝 가트를 돌아 돌아오는데 해가 강 저편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필자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아내는 “바라나시가 모든 것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랬다. 바라나시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애써 감추고자 하는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공포는 물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행위를 원초적인 형태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종교를 떠나 그 본래의 모습이 바라나시를 성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바라나시야말로 그 ‘날것’으로부터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장소였다. ‘유령의 도시’ 바라나시가 어느 순간 필자의 내면에서 그렇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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