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새책>고전의 힘, 인간의 원형을 만난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안팎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옳고 그름의 가치 전도, 상식의 파괴, 믿음과 신뢰의 상실이 깊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한 마디’ 말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을 간절히 원하지만 시원한 대답도 실은 그때뿐이다. 고전은 그런 면에서 오랜 세월 인간의 삶을 관통하며 그 가치를 입증해 왔다는 점에서 인간의 본성, 인류의 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종의 ‘신드롬’이 되다시피한 ‘올재 클래식스’(사단법인 올재)시리즈는 그동안 시중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맑은 지혜의 샘과 같은 고전들을 발굴, 선보임으로써 시야를 넓혀준다.

수기(修己)와 치국(治國)의 지혜와 도를 담은 고전들로 구성된 이번 세 번째 시리즈 가운데 현암 이을호 역의 ‘한글 중용대학’은 주자와 다산 정약용의 견해를 비교하며 깊이 있는 해석과 평설로 유교경전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현암은 다산의 해석을 바탕으로 기존 주자가 풀이한 중용의 틀을 깨고 신격을 갖춘 상제천(上帝天)의 존재를 전제로 새로운 인식론을 폈다.

이와 함께 신의 절대적 존재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의 길에 닿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파스칼의 ‘팡세’, 조선 후기 경험적 인식론을 토대로 사물인식과 소통을 재해석한 최한기의 ‘기측체의’ 등은 시대를 뛰어넘어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는 고전이다.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치국의 새로운 길을 제시, 지도자들의 교과서가 돼 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조선 후기 개혁을 꿈꾼 지식인의 울분이 담긴 유수원의 ‘우서’도 올바른 길에 대한 탐색으로 이끈다.

특히 영조까지 찬탄해 마지 않았던 조선 사회개혁의 비전을 담아낸 유수원의 ‘우서’는 이번 시리즈의 백미다. 남로(南老)였던 유수원은 18세기 중엽 손꼽혔던 석학이었지만 당쟁의 여파로 대역부도의 죄목으로 사형되고 멸문을 당한다. 19세기까지 문헌에 거론되지 못하고 저자 미상인 채 전해지던 ‘우서’가 제자리를 찾은 건 1970년 전후. 부국안민을 향한 사회개혁론으로 근본을 역설한 ‘우서’를 통독한 뒤 영조는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만을 기술하였으니, 참으로 귀하다.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 아닌 글로써 이를 기술하였으니, 실로 훌륭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중국 인문출판계 뜨거운 화두를 던진 금석문의 권위자 리링 베이징대 교수의 ‘집 잃은 개(喪家狗)’(김갑수 옮김/글항아리)는 정치적 견해와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배제한 ‘논어’ 자체로 논어읽기다.

리링 교수는 공자에 덧씌워진 허울을 벗겨내고 인간 공자의 맨얼굴을 조명한다. 즉 공자가 “성스러움이나 인 같은 것을 내가 어찌 감당하겠느냐?”고 한 말은 그 말대로라는 게 리링의 해석이다. “공자는 결코 성인이 아니며 뜻을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나 그러지 못했던 외로운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신뢰할 만한 번역과 해석,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올재 클리식스는 출간과 동시에 동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고전읽기는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첩경이다.

그는 공자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공자는 출신은 비천했지만 고대의 귀족으로서 입신의 표본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찾으러 다녔고 배우는 데 싫증을 내지 않았고 남을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고대문화를 전달하고 사람에게 경전을 읽도록 가르친 사람이었다.”

리링은 인ㆍ의ㆍ효ㆍ친구사귐ㆍ충ㆍ신 등 수행의 측면에서 공자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살피고 예를 익히는 것, 학문을 연마하는 것, 관직에 나아가는 것, 교육하는 것, 명성을 얻는 것, 부귀를 누리는 것 등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철저히 공자의 입장에서 들려준다.

가령 공자에게 중요한 개념이자 자주 되풀이돼 언급되는 ‘군자’에 대해 리링은 하나의 신분으로서 군자와 도덕적 개념으로서의 군자가 다 포함된다고 본다. 평민으로서 공자는 혈통론을 반대했는데 충분히 철저하지는 않았다는 것. 공자의 태도 역시 “성분론이든 능력제일주의든 중요한 것은 행동에 있다”는 것이었다. 공자는 전통적 귀족을 좋아했고 귀감으로 받들었지만 당시의 귀족은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군자에 대해 도덕과 학식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는 해석이다.

‘예’(禮)도 기존의 관점과 좀 다르다. 공자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평등하지도 못하다고 봤다. 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적당하게 타협하고 조정함으로써 혼란이 폭발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논어’의 수많은 변형 속에서 논어의 원형을 복원한 것으로 평가받는 역작이다.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